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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Aug 28. 2019

사람은 변한다 혹은 변하지 않는다

10년

10년 단위로 인생을 평가하고 규정해보는 습관이 있다. 왜 10년일까? 10진법을 주로 쓰기 때문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10년을 주기로 수많은 고정관념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일까? 20대는 어떻고, 30대는 어때야 하고, 40대는 어떨 것이고 등등. 아니면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들 대부분 스무 살을 기준으로 완전히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는 설정에 공감하기 때문일까? 시작이 스무 살이니 그다음 변화를 점검하는 시기는 서른 살이 되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서른

서른 살이 되는 게 좋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은 변한다 혹은 변하지 않는다 그 어느 쪽을 지지하더라도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른 살 이후의 나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엄청나게 달라졌다. 늘 어설프기만 한 20대 후반의 삶이 너무 지긋지긋했고 나는 다른 내가 되는데 거의 몇 년의 시간을 다 쏟아부었다. 기질조차 바꾸고 싶을 만큼 간절하게 노력했다. 그리고 정말 노력해서 달라 보이는 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너 정말 달라졌구나 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안심하고 그 노력을 멈췄다. 


인생곡선을 그리자면 이십 대 후반 바닥을 찍었던 그래프는 서른 살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어느 순간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떨어지지 않는 채로 그 상태를 유지했다. 매우 하이 한 상태의 지속. 최상이었다. 그리고 삼십 대 후반이 되자 마흔 이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계획한 대로 살고 싶었다. 


마흔

그리고 마흔이 되었을 때 대부분 미리 설계했던 그림대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안정적으로 마흔에 안착했고 크게 요동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을 다 안다는 착각만큼 우스운 것도 없다. 올해 나는 또 변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나는 과거라는 레퍼런스를 꺼내 들었다. 이십 대 후반, 고통스럽던 시기를 어떻게 통과했는가 떠올렸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선생님에게 마치 그 시간을 통과했을 때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너무 괴롭지만 그게 최선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매일 감옥에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이십 대 후반에 나는 정말 감옥에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단절이 너무나 절실할 때였다. 물리적 단절이 많은 것을 저절로 해결해주었다. 올해 상반기 내내 그때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해 내려고 애썼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노동을 하고 일찍 하루를 마감하고 다시 밥을 먹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잠이 드는 그런 삶. 아주 기본적인 욕망에만 충실한 한편으로 인위적으로 욕망을 키우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는 그런 삶. 그런데 한 번 겪어본 그 과거를 다시 재현해내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비유적으로 현실이 감옥 같다고 표현해도 실제 감옥은 아니라서, 물리적 단절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한 번은 희극이었을지 모를 그 경험을 인위적으로 체현한다는 것은 이제 비극에 가까웠다. 


그때는 그때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그리고 그때 그랬듯이 지금도 답을 모른다. 유난히 나이를 타는 해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런 건 모른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가끔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태로 사는 것조차 최선을 다해 시도해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 앞에 결국 굴복하지 않을 길이 없고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있겠지만 지금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혹은 노력을 하지 않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겠지. 이렇게 말하면 그런 생각조차 지우라는 충고가 들려 온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나면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모르겠다. 그냥 최선을 다하며 혹은 최선을 다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지금을 산다. 의식하지 않아도 시간 속에 녹아들어가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그런 상태가 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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