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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Sep 04. 2019

여름의 끝

우리는 정확히 모릅니다. 늦여름에 울어대는 매미가 언제 가장 격렬하게 울어대는지. 가을에 유난히 파란 하늘은 언제 가장 파란지, 봄이 되면 만발하는 꽃들은 정확히 언제 피어나는지. 일 년에 네 번 계절의 변화를 겨우 체감하는 정도로 살다 보면 어느 즈음 울어대던 매미, 어느 즈음 유난히 높던 파란 하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잠시입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유난히 계절의 변화가 민감하게 느껴지는 날. 평소처럼 늘 들리던 매미와 귀뚜라미 소리도 의미를 담아 들리는 날. 그런 날에는 아주 섬세한 감정으로 매만지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의 변화가 마음 깊은 곳 밑바닥에서부터 조용하게 퍼져 올라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날에는 특별했던 기억들도 조금은 무덤덤하게 느껴져 너무 기쁘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은 차분한 감정으로 나를 관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허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날도 그저 그런 날로 사라지리라. 다만 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날이었으리라.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던 가벼운 두통은 사라지고, 무거운 뒷골이 맑고 가벼워졌습니다. 놓치기 싫은 순간을 글로 남기려 컴퓨터를 켜고 무심히 떠올렸던 문장들을 적어 내려 갑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 느낌은 사라지고 없네요. 깊어 가는 늦여름 밤이 너무 아까워도 내일 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렇게 또 많은 날들을 스쳐 지나가듯 놓치고 살겠죠. 여름의 끝, 잡고 싶은, 달달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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