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마지막 50일
매체에서만 접하던 ‘말기 암 환자’의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일말의 어떤, 조금 나은 결과를 예상했었다. 아니 바랬었다. 아직 아빠는 아프면 안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고, 또 한 편으로는 그동안 고생만 했던 아빠를 호강시켜드려야 한다는 ‘장남’의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아빠를 따뜻하게 살피지 못한 시간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와이프에게도 소식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아빠를 같이 보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실 면회는 안 되지만 환자가 보호자와 동행해 1층 로비에서의 면회는 가능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먹을 만한 음식과 간식 거리를 샀다.
어둠이 내려 앉은 병원의 공기는 오전과 확실히 달랐다. 1층 로비는 드문드문 면회를 하고 있는 방문객들이 있긴 했지만, 확실히 횅한 느낌이 있었다. 그 로비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처음 아빠와 이 병원 응급실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왜 더 일찍 아빠랑 병원에 안 왔을까?’, ‘나처럼 이렇게 무관심한 사람도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때, 멀리서 다가오는 아빠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채,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낯 부끄러워서 평소에 아빠 얼굴도 잘 안 쳐다보는 나인데, 본능적으로 아빠의 안색부터 살폈다. 생각보다 훨씬 얼굴이 좋아보였다.
사실 겨우 며칠 동안 얼굴을 못 본 것이지만, 으레 ‘말기 암환자’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때문인지 걱정을 많이 했던 탓이다. 너무 분위기가 무거워질까 봐 더 밝게 웃으며 아빠를 반겼다.
“얼굴이 더 좋아졌네”
“응, 괜찮아”
“우리가 좀 알아봤는데, 암도 고칠 수 있는 병이래. 좋은 병원으로 열심히 다니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 그래”
와이프도 옆에서 거들었다.
“돈도 걱정하지 마세요. 동우도 잘 벌고 저도 잘 벌잖아요. 그런 거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 받을 생각만 하세요”
“그래, 알았어”
우리는 아빠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열심히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아빠는 우리 이야기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고만 연발했다. 아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은 뺨으로 흘렀고, 아빠는 재빨리 눈물을 닦아냈다.
그동안에도 이렇게 혼자 눈물을 닦아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릴 여유도 없었을 거고, 흘려도 안 된다는 ‘가장’의 무게를 본인이 혼자 지탱했을 것이다. 아들인 나만 느낄 수 있는 아빠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용기를 내어 아빠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일단 다음날 퇴원하기로 했다. 지금 병원보다는 조금 시일이 걸려도 유명한 의사에게 확실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제야 진짜 암과의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