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마지막 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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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만 해도 아주 평범하게 집에서 지냈는데, 암 환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 사이, 동생에게도 아빠의 소식을 전했다. 예상대로 동생은 펑펑 울었다.
"방법은 없는 거야?"
"왜 없어, 무조건 좋은 교수 찾아서 그 병원으로 가야지"
동생은 여느 딸처럼 아빠에게 잔소리도 하고, 술 친구도 되어주는 존재였다. 엄마가 하지 못하는 말을 아빠에게 대신 해주며 혼내기도 했고, 매일 반주를 즐기는 아빠와 가끔 술잔도 기울여줬다. 주당 DNA를 동생이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아빠는 동생에게 전형적인 '츤데레' 아빠였다. 동생의 귀가시간이 늦으면 엄마는 바로 동생에게 전화해 "왜 안 들어와!"라고 채근했지만,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알아서 잘 들어오겠지"라며 '중립'의 태도를 취했고 일절 동생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생이 집에 오면 제대로 왔는지 슬쩍 방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래서 동생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아빠와 엄마만 있는 집 안의 적막이 걱정되었다. 그만큼 동생은 우리 집에서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 뒤로 뜻밖의 임신 소식까지 전해주었고 아기를 좋아했던 아빠도 티는 안 냈지만, 손녀의 탄생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빠를 오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아빠를 더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고, 손녀가 세상에 태어나면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폐암에 유명한 교수를 쭉 살펴봤고, 내가 가입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폐암가족 카페'도 가입했다.
카페에 아빠 상태에 대한 글을 올리니 '어렵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댓글이 다수였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얘기해주니 없던 용기가 생겨났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열심히 병원에 연락을 돌렸고 최종적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빠의 사업도 당장 정리하기로 했다. 오직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빠는 병원에 가기 전까지 집에서 걷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암 선고를 받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암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사랑 8'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