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은 Oct 13. 2023

18. 우선순위

2023년 2월 어느 날, 대학원 OT에 갔다. 오랜만에 가보니 대학은 입구부터 요란했다. 코로나가 끝났음을 축하하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00인이여, 환영합니다'를 시작으로 5미터에 하나씩 파란색 현수막이 나풀댔다. 대학 신입생 OT가 끝났는지 똑같은 잠바를 입은 100여 명의 무리가 깃발을 따라 우글우글 걸었다. 그 뒤로 올해 신입생이 어쩌고저쩌고 하릴없이 떠드는 복학생들의 설레는 표정이 눈에 띄었다. 


중앙도서관을 지나 대학원 OT가 진행되는 건물로 들어갔다. 조교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하면서 자기소개를 시켰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 지역에서 기간제 교사로 있다가 임용 준비를 할 겸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짬을 내어 카톡 했다. '도착했음. 연이는 잘 있죠?' 파트너에게 금방 답이 왔다. '네, 먹고 노는 중' 숨을 고르게 쉬면서 고개를 들었다. 내 소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차차, 나는 교육대학원에 왜 왔더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원래 교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서울시 기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청소년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마른 땅을 박박 긁고 있는 듯한 소진의 경험을 했다면, 교사 역할은 청소년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충만함을 느끼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도 컸다. 가르치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얕은지 드러나서 공부를 해야 했다. 안정적으로 교사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던 참이라 교육대학원을 준비했다. 합격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임신 사실을 알았다. 계획 임신은 아니었지만 낳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아니어서 받아들였다. 임신한 몸으로 퇴근하고 수업을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아 휴학을 했다. 출산하고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느라 휴학생 신분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복학 신청을 하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고민이 깊어졌다. 


파트너와 부모님은 대학원을 다니라고 했다. 아이가 크면 공부하기 힘들 테니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친구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커리어를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대학원 다니는 게 좋아. 너한테 투자하는 걸 아끼지 마.", "육아는 양보다 질이야. 아이랑 있을 때 잘 하면 되잖아. 네가 학교 가면 남편이 하겠지.” 나도 같은 생각이긴 했다. 파트너도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막 100일이 지난 녀석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내가 얘를 두고 공부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 다니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머뭇거리다 복학 신청을 했지만 대학원을 준비하던 때와 상황이 달라져서 그런지 여러 가지가 고려되었다.  


교육대학원은 자격증 취득을 위해 들어야 하는 수업이 많았다. 한 학기에 6과목, 일주일에 3일은 온전히 학교에 있어야 했다. 등록금은 한 학기에 600만 원이 넘었고 5학기 제라 전체를 계산하면 3000만 원이 넘게 필요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대학 잠바를 입고 우쭐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자격증을 얻는 거 말고는 메리트가 없었다. 올해는 낮에 아이를 보다가 저녁에 수업을 간다 쳐도 내년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아리송했다. 게다가 출생률 감소로 학교가 없어지고 교대 정원이 미달이라는 뉴스를 보면서 자격증만으로 교사를 할 수 있는 지도 미지수였다. 임용고시 준비는 또 다른 문제였다. 마른침을 삼켰다. 교사 자격을 얻는 대신 무언가 잃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OT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 "저는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봐야 해요" 말하고 서둘러 움직였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한 교정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대학원을 다니면 아이가 있어서 가봐야 한다는 말을 매번 하게 되겠다고. 불쑥 질문이 스쳤다. 혹시 아이를 원망하게 될까. 학교를 다녀도, 안 다녀도 아이를 원망하게 된다면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바엔 교사를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대학원 말고 다른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자고, 어깨를 으쓱했다. 바뀐 상황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 같았다. 나를 기다릴 사람들이 떠오르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전 17화 17.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