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님, 식사하세요."
산후조리원 생활은 맘카페 리뷰처럼 호사스러웠다. 청소, 빨래, 식사 준비 심지어 식사와 간식을 침대맡에 갖다 줬다. 엄마뻘 되는 분이 음식을 갖다 줄 때마다 송구스러웠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내 생활이 이루어지니 나는 아무 할 일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TV와 침대가 있는 방에서 먹고 자면 되는 거였다. 코로나가 확산되는 상황이라 외출이 안 되고 면회도 불가능했다. 산후조리원 내 프로그램도 축소되었다. 누구는 밀린 드라마를 본다는데 보고 싶은 것도 없고 책을 읽으면 눈이 침침했다.
그저 신생아실에 있는 어흥이가 눈에 밟혔다. 신생아실에는 열댓 명의 아가들이 하얀 천에 둘둘 말려 투명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술대를 연상시키는 환한 조명 탓에 하얗게 표백된 공간 같았다.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신생아실 선생님 서 네 명이 의자에 앉아 아가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았다. 신생아실에 갈 때마다 어흥이는 여기가 어디든 편안한 듯 곤히 잤다. 나는 동물병원에 있는 새끼 강아지들이 떠올랐는데 그러자 어흥이가 안쓰러워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어흥이를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다가 입을 오물오물거리거나 코를 찡긋거리는 게 귀여웠다. "어흥이 엄마, 어차피 집에 가면 하루종일 아이 볼 텐데 여기서는 좀 쉬어야지." 산후조리원 원장님이 산모들 컨디션을 체크할 겸 방문을 여는 오후 2시, 내 방에서 말했다. 원장님은 50대 중반 즈음 되는 여성에, 하이톤 성량으로 수다스럽게 말해서 그녀 목소리가 산후조리원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방에서 녀석을 보는 건 문제없었다. 녀석은 잘 잤고, 나는 보고 배운 대로 기저귀를 갈고 때때로 모유를 수유하고 분유를 먹였다. 녀석의 손바닥만 한 등을 통통 두들기면서 소화를 시켰다. 꺼억. 이럴 거면 집에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산후조리원에서 기대했던 건 마사지였다. 평소에 마사지받을 일이 없어서 이참에 몸을 풀 수 있을지 기대됐다. 가뜩이나 무료해서, 마사지가 있는 날은 달력에 빨간펜으로 표시하고 싶을 정도로 큰 낙이었다. 마사지받고 나면 피부가 반질반질 미끄덩해지고 좋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정해진 횟수가 지나자 추가비용을 내도록 유도했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내내 마사지를 받다간 한 달 월급을 탕진하는 셈이었다. 상술인 것 같아 불쾌하면서도 '이런 것도 못해!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심통 비스무리한 것이 났다. 남편이 정신 차리라고 했다(그는 T다..). 차라리 그 돈으로 한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맞는 말이었다.
하루가 더디게 흘렀다. 식사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버텼는데 두어 번 먹어보니 정말 맛이 없었다. 음식은 무거운 사기그릇에 뚜껑이 덮여있어 따뜻했다. 온기에 비해 맛은 별로였다. 말라도 너무 마른 갈치구이, 엄지손가락 크기의 떡갈비, 당면이 가득한 잡채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미역국은 짜서 물을 반컵 더 넣고 숟가락으로 휘젓다 보면 입맛이 사라졌다. 모유수유에 대한 의욕으로 음식을 잔뜩 우물우물 씹었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그리웠다.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자니 녀석을 오롯이 돌볼 자신이 없었다. 녀석이 온몸을 다해 울어재끼면, 아무리 어르고 달래며 방안을 서성대도 그치지 않으면 식은땀이 나고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입을 오물거리던 녀석이 불현듯 미간을 찌푸리면서 뻬에에엥 울면 황급히 신생아실로 데리고 갔다.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능숙하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 녀석은 금방 울음을 그쳤다. '도대체 왜 울었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리송했다. 유독 녀석이 낯설어 보이고 내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방에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