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좀 그만해"
나는 아이에게 소리 질렀다. 녀석은 2시간째 울고 있었다. 울음은 약해졌다가 고함에 가깝게 커지길 반복했다. 눈은 잔뜩 찡그리고 입은 크게 벌린 채 "으아아아앙" 하다가 종종 비명을 섞어 울기도 했다.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지옥인가 싶을 정도로 암담한 마음이 차올랐다.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더 크게 울었다. 내 팔에 힘이 풀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녀석은 팔과 다리를 버둥댔다. 나도 짜증 섞인 눈물이 났다. 너도 울고 나도 울자며, 나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한 3분 지났을까. 나는 3분을 엉엉거려도 진이 빠지는데 너는 오죽할까. 버둥대는 아이를 다시 안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이 그쳤다. 녀석은 몸에 힘을 풀고 나에게 완전히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녀석이나 나나 기진맥진 상태였다.
산후조리원에서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밤이었다. 그렇게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쳐다보다가, 아무래도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집에 낯선 사람이 오는 것이 싫어 혼자 아이를 돌보려고 했으나 이러다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지며 산후도우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전 9시, 띵동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산후도우미는 자그마한 체구에 싱긋 웃는 미소가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아이에게 인사했다. "안녕, 이연아. 앞으로 3주 동안 함께할 이모야. 잘 부탁해" 녀석은 반가운 지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아이에게 친근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그녀를, 나는 선생님이라 불렀다.
선생님은 아이를 관찰했다. 몇 시에 수유를 하고 얼마나 자는지,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울음의 종류를 파악했다. 분유를 먹고 절반 정도 게우자 소화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우는 이유가 배앓이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이를 능숙하게 안아서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아이가 꺼억 소리를 내어 선생님과 내가 마주 보며 웃었다. 내가 트림한 것처럼 개운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 분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패턴이 생겼다. 수유를 하고 놀다가 낮잠을 잤다. 시간을 보면서 '이 정도 됐으니 먹고 싶다는 거구나, 자고 싶다는 거구나' 유추하게 됐다.
아이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 난감했다. 놀아달라는 느낌인데 말이 통하지 않는 갓난아이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침대에 걸린 모빌을 흔드는 정도였다. 선생님은 달랐다. "이맘때 아이들도 웬만한 말은 알아들어요. 그리고 알아듣지 않으면 어때요? 엄마 목소리 들으면 좋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다가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창문 밖 풍경을 소개해줬다. 녀석의 옹알이 소리에도 오냐오냐 반응했다. 선생님 반응에 녀석은 더욱 신나게 옹알이를 했다. 나도 가만히 흉내 냈다. 말을 하기 전에 저런 소리부터 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때때로 선생님은 아이를 안고 거실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등을 쓸었다. "우리 연이 참 잘하고 있어" 그녀는 그 말을 하루에도 여러 번 했다. 다리에 앉혀 트림을 시키다가, 엉덩이를 토닥이며 재우다가, 놀아달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도 그랬다. 애가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잘하고 있다는 말에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특히 재우는 시간에 잘하고 있다는 말은 자장가였다. 녀석은 금방 잠을 잤다. 신기하게 나 또한 위로받았다. '내가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 괜찮아. 잘하고 있어.' 속으로 되뇌었다.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자책하는 마음이 스르르 사라졌다.
3주가 지나고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오시는 날, 선생님은 콩나물국과 밑반찬을 잔뜩 만들었다. “아이를 돌볼 체력이 가장 중요해요. 밥 거르지 말고 드세요" 선생님이 가시고 냉장고 문을 열자 반찬 냄새가 솔솔 풍겼다. 배가 고프지 않았었는데 침이 고이고 입맛이 돌았다. 맑은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 이마에 땀이 나면서 손발이 뜨끈해졌다. 혼자 아이를 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들이 사라졌다. 모빌을 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책 읽어줄게" 녀석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사탕을 먹은 것처럼 볼이 동그랗고 발그스름해졌다.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봤다. 주인공 흉내를 내면서 동물 소리를 내니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녀석의 웃음은 마법이었다.
선생님에게 엄마 수업을 받은 셈이다. 아이를 관찰하는 법, 아이에게 반응하는 법을 배웠다. 인터넷은 정보가 넘치지만 도무지 적용하기 어려웠다. 우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라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고, 재울 땐 바닥에 등을 대고 재우라는데 그러다 밤샐 것 같았다. 때때로 엄마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엄마는 아이를 울리면 안 된다면서 조금만 칭얼대도 분유를 먹이거나 안고 계셨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책 저 책, 이 영상 저 영상의 저마다 다른 이야기에 혼란스러웠다. 산후도우미 선생님 덕분에 가닥이 잡혔다. 신생아를 돌보는 전문가이자 엄마 선배인 그녀가 있어 어떤 시기를 무사히 지나온 것 같다. 아이를 함께 돌보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느꼈다. 아이는 절대 홀로 키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