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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Aug 25. 2023

15. 너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

"으오아아아" 

아이는 50일이 지나면서 옹알이를 시작했다. 아이는 나를 보면 반갑다고 '아-갸'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손을 허우적댔다. 노래 나오는 모빌을 보면서 신나게 발길질을 하다가 옆에 앉은 나를 번갈아 봤다. '엄마, 나 보고 있어? 이거 봐, 나 발길질도 해'하는 눈빛이었다. "우와, 우리 연이 잘하네" 내가 추임새를 넣으면 녀석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크엉크엉 콧소리를 내며 "오아, 오, 야유-" 소리도 냈다.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가만히 듣다가 나도 흉내 냈다. "으, 오아, 아, 앙, 이?" 내 반응에 녀석은 목을 빳빳이 하면서 음절을 섞어 "으오아요아, 으아아앙이-" 길게 뺐다. 녀석과 나,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남편도 자주 녀석을 따라 했다. 마치 옹알이 대회가 열린 것처럼. 아이가 하이톤으로 "으-아아오-" 외치면 그도 따라 말했다. 언어 이전의 언어랄까. 여러 톤의 옹알이가 집을 채웠다. 할머니는 아이 옹알이에 맞장구를 쳤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래서?"라고. 녀석은 더욱 신나서 힘차게 오아오앙을 외쳤다. 할머니는 말했다. "엄마하고 아빠한테 말 못 하는 거 할머니한테 다 해. 들어줄게." 녀석은 진짜 비밀을 말하기라도 하듯 작게 옹알이 했다. 옹알이하는 아이도, 옹알이에 반응하는 어른들도 귀여웠다.  


녀석이 신나서 옹알이할 때가 있는 반면 칭얼거림이 섞인 옹알이도 있다. 울기 직전일 때였다. 배고플 때, 졸릴 때, 심심할 때, 배 아플 때, 응가했을 때, 더울 때 저마다 울음이 달랐다. 짜증 섞인 울음, 뿌엥 하는 울음, 대성통곡(!)으로 구분이 된다. 배고프면 울음 2스푼에 애원 1스푼과 짜증 2스푼, 심심하면 울음 1스푼에 짜증 1스푼, 졸리면 울음 2스푼에 짜증 5스푼 그리고 비몽사몽 3스푼의 농도. 울음을 해석하려 노력할수록 울음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알았다. 대충 알아듣고 "우리 연이, 잘까?"하고 다가가면 녀석은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해댔다.  


옹알이만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도 언어였다. 녀석은 먹고 소화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모빌을 보거나 창밖을 구경하고 낮잠을 잤다.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빨래를 널고 있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어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움직임에 따라 아이 시선이 따라왔다. 설거지를 하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 연이가 뭐 하고 있나 쳐다보면 금세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내가 "엄마 보고 있었어?" 다가가면 녀석의 입이 반달 모양이 되도록 활짝 웃었다. 


아이는 4달이 지나자 스스로 뒤집었다. 손과 발을 올려 버둥대더니 몸을 움직였다. 하늘로 뻗대던 다리를 옆으로 비틀었다가 발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연습했던 시행착오를 동원하여, 끙차. 자기 생각보다 쉽게 되었는지 녀석의 표정은 어리벙벙 반, 뿌듯함 반이었다. 내가 "오오! 뒤집었네!" 감탄하며 박수치자 연이는 눈을 반짝였다. '나 뒤집기하는 거 봤어? 나 해냈어!'   


뒤집기를 하고부터 동작도 언어가 되었다. 졸리다고 칭얼대서 자리에 눕히면 아이는 팔딱 뒤집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 조금만 더 놀다가 잘래. 너무 신나' 재미있는지 계속 반복했다.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았다. 잠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연이를 번쩍 안아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을 기댔다. 내 목덜미에 아이의 콧김이 닿아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연이가 새근새근 잠이 들면 나는 아이를 조심조심 침대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실눈을 뜨고 누가 옆에 있나 확인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내 검지 손가락을 꼭 쥐었다. 아이 손은 내 검지 두 마디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손 전체를 감싼 것 같이 포근해졌다. 새근새근 잠든 얼굴을 멍 때리며 보다가 생각했다. 녀석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고. 


"이맘때 아이에게 받은 사랑이 평생 가나 봐.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더라." 

좋아하는 선생님과 대화 중에 그녀 말이 내 귀에 박혔다. 녀석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살피고 관찰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이 또한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끊임없이 나를 쳐다보고, 말을 걸고, 손을 뻗고, 나에게 온몸을 기대고,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누가 나를 보고 저렇게 반가워할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팽팽하게 터질 것처럼 벅차오르고 황송해졌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으면서 엄마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이제야 온전히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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