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선물하시게요?"
"네, 아이 백일이라서요"
두툼한 외투를 입고 시린 손을 비비며 꽃집 문을 열었다. 추운 겨울과 다르게 그곳은 봄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졸업식 시즌에 맞게 꽃다발이 여러 개 놓여있었다. 아이 100일을 기념해 꽃다발을 사고 싶어 머뭇거리자 내 나이또래 사장님이 물었다. 내 대답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매우 기뻐하는 얼굴로 "어머, 정말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죠?"라고 말했다. 처음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근함에 나도 활짝 웃었다. 그녀는 백일에 어울리는 꽃을 추천해 주면서 서비스로 몇 송이를 더 넣어주었다. 꽃다발을 손에 쥐고 나오면서 봄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따뜻했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100일을 기념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백일상 대여, 삼신상 차리는 법 등 정보가 쏟아졌다. 나는 '삼신상(출산을 도와준 삼신에게 감사의 의미와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올리는 상)'에 혹했다. 이연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100일 간 큰 문제없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에, 누구에게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삼신상 차리는 법을 알아보니 번거롭고 주의할 점이 많았다. 상은 동트기 전에 준비하며, 음식 간을 하지 않고 칼과 가위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알아볼수록 '응? 왜?' 질문이 샘솟았으므로, 새벽부터 요리는 자신이 없었으므로 간단히 하기로 했다. "요즘 시대의 삼신할머니가 좋아하는 걸로 하자!" 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무어든 괜찮다고 했다.
100일을 하루 앞둔 날, 남편이 아이를 보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제사상 분위기가 나는 사과와 배 그리고 한과, 약과를 샀다. 다음엔 뭐가 좋을까. 삼신'할머니'니까 달달하게 뭉개지는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을까? 이참에 가고 싶었던 디저트 카페에서 흑임자 케이크와 쵸코쿠키를 골랐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그러고 나서 떡집에 갔다. 백설기를 찾는 나에게 떡집 사장님이 아이가 백일이냐고 물었다. 꽃을 들고 있어서 그런가. 쑥스럽지만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덤이라면서 백설기를 더 챙겨주었다. 어깨에 맨 장바구니가 과일과 케이크, 백설기로 두둑해졌다. 기분 좋게 걸으며 생각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모든 마음이 '삼신'일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디저트 종류를 한가득 사 오자 파트너가 웃었다. "살찌는 것만 사 왔네?" 원래 제사는 지내는 사람이 편하고 좋은 방식이면 된다면서, 파트너가 자기는 뭘 하면 되냐고 물었다. "축문이라는 게 있던데 한번 검색해 보고 준비해 줄래?" 그가 알겠다고 끄덕였다. 내가 자러 들어간 사이, 그는 축문을 썼다 지웠다 하며 하얀 도화지에 가지런한 글씨로 마음을 담았다.
100일이 되는 새벽, 동트기 전에 삼신상을 준비했다. 아이가 5시에 분유를 먹고 6시에 잠이 들어 가능한 일이었다. 자는 아이가 깰까 싶어 방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았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자 남편이 방에서 나왔다. 어제 축문을 쓰느라 늦게 잤다는 말에 조금 더 자도 된다고 소곤대니, 그가 어떻게 그러냐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맞아, 혼자 준비했으면 엄청 삐죽 댔을 거야. 남편이 나의 좁디좁은 마음을 알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침대는 제사상으로 활용하기 좋았다. 거실의 큰 창 앞에 아이 침대를 두고 가운데에 정수물을 올렸다. 한과와 약과, 케이크와 과일을 좋아하는 접시에 담았다. 포장지를 뜯어 그릇에 담는 것만으로도 그럴싸했다. 백설기에는 동네빵집에서 산 초코 연필로 '이연' '1.0.0'을 썼다. 그리고 초에 불을 밝혔다.
동이 트는 7시 즈음. 삼신상을 두고 둘이 멀뚱이 섰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그의 질문에 내가 "절해야지" 말하다가 킥킥댔다. 한 번 웃음이 터지니 계속 웃겼다. 고요한 새벽에 이러고 있는 게 비현실적인 데다가 삼신상에 관심 없을 줄 알았던 남편이 진지한 모습을 보이자 살짝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남편도 같이 웃다가 자신이 진행하겠다는 듯 흠흠 기침하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이연이 100일을 맞아 삼신할머니께 인사드립니다. 절 하겠습니다" 나도 웃음이 사라졌다. 절을 두 번 하고 그가 준비한 축문을 읽었다.
"(..)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승달에 달 붇듯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 주십시오"
그가 축문을 읽는 중에, 남색의 진한 하늘에 붉은 태양이 자그마하게 솟았다. 매일 같은 하루 같지만 오늘은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 부모가 된 우리의 100일이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하루,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절을 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를 것이었다. 100일 전의 나와 100일 후의 내가 다른 것처럼. 100일 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니 절로 감사인사가 나왔다. 세상 만물의 도움으로 이연이도, 나도 살아가고 있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이의 100일 기념하며 이연이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청소년 기후행동, 장애인 이동권 투쟁, 분쟁지역의 아이들 학교 짓는 데에 마음을 보탰다. 앞으로 이연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