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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Oct 18. 2023

20.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재은아, 네 인생은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광화문역에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타닥타닥 걷던 발에 힘이 살짝 풀렸다.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아 머리를 굴리다가 멍해졌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아이가 밟혀서 안 되겠더라는 내 말에 그녀는 그럴수록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가만히 맞다고 끄덕였다. 그러고는 (혼자 사는) 너는 괜찮냐고,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조금 슬프게 웃었다. 우리는 집 방향이 달라 다행이었다. 친구가 타는 지하철이 먼저 도착했다. 그녀가 지하철 타기가 무섭게 나는 몸을 돌렸다. 얼굴을 쳐다보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 자신이 없었다.


4월의 어느 저녁, 15년 지기 대학 친구들과 만났다. 지하철에서 걸어 올라오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지하철 계단에서 만드는 달고나 냄새와 매연이 섞여 달콤하면서 큼큼한 냄새가 났다. 세종문화회관 뒤로 노을이 붉게 번졌다. 아이는 밥을 먹었을까, 남편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운동을 가고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지만 저녁에 서울 시내를 나온 건 처음이라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퇴근하는 사람들을 피해 약속장소로 향했다. 


각자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친구들이라, 만나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해소되지 않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상사 얘기, 인사관리 시스템, 규모 있는 조직의 업무 환경을 듣고 있자니 나만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았다. 한 친구가 주제를 바꾸듯 나에게 말했다. "아이 키우는 건 어때?" 갑작스레 나에게 바통이 넘어온 것에 당황해서 서둘러 답했다. "음, 힘들긴 한데 괜찮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핸드폰에 찍힌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럼에도 기쁘고 행복한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마음 편했지만 한편으로 조금 외로웠다.  


화살 하나가 머리에 탁 꽂힌 것처럼 '네 인생은 없냐'는 친구의 질문이 오래오래 남았다. 아이를 재우려고 같이 누워있다가, 이유식을 먹는 걸 보다가, 기저귀 갈다가,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길을 걷다가 시시때때로 생각났다. 처음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분하고 화가 났다. '아이가 없어서 몰라'하고 넘기기엔 모르니까 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해졌다. 아이가 자지 않고 뻬엥 울 때, 이유식 먹다가 바닥에 음식을 던져놓을 때, 기저귀에서 똥냄새가 날 때, 유아차 끄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누구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누구는 이직하고 승진하는데. 나는 '내 인생'을 사는 대신, 애 똥 치우고 먹이고 재우는 일상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나는 10년 넘게 비영리조직에서 기획, 홍보 업무를 맡아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어화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교사 역할을 해왔다. 한 사람의 변화를 바라며 수업을 설계하고, 동료들과 수다 떨듯 아이디어를 펼치고, 골똘히 고민하며 몰입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성취의 경험은 곧 주변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의 등장은 업무에서의 내 역할, 대학원 진학 등의 목표를 조정하게 했다. 한창 일이 바쁘게 진행되는 8월에 육아휴직을 갖게 되어 제대로 마무리한 것 같지 않아 찜찜했다. 다시 돌아오면 이렇게 해봐야지 구상했던 것들은 아이 태어남과 동시에 펑 사라졌다. 성취와 인정의 세계에서의 나는 죽고, 엄마로서의 내가 태어났달까.


작고 조물거리는 생명을 대면한다는 것. 그전의 나는 상상도 못 할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나는 아이가 커가는 데에 필요한 건 모두 서툴렀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수 있구나 새삼 알았다. 아이가 하나하나 익혀가듯, 나도 아이를 만나기 위해 배워야 할 게 산더미였다. 동시에 이 작은 녀석에겐 내가 거대한 존재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분유를 달라거나 재워달라고 우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그랬다. 육아란 전혀 상반된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어쩔 땐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겨우 버티고, 가끔은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양면적인 마음이었다.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 분명하고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나로선 녀석의 등장은 내가 붕괴될만한 사건이 되었다. 


그렇기에 친구 말을 곱씹을수록, 내 인생은 없어진 게 맞았다. 더 이상 내가 발화하는 말에는 '나'가 주어로 등장하지 않았다. 나의 주어는 '아이'였다. 주어가 이동하는 경험은 시선의 변화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가, 내가 어떻게 보일까에서 아이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아이의 상태는 어떤가. 끊임없이 타인을 살피고 욕구에 반응하고, 녀석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나를 '엄마'로 만들고 있었다. 물론 아이가 내 삶의 전부가 되면 나와 동일시하면서 들들 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기 위한 거리도 필요하다. 아이를 내 소유물로 보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고 싶다.


한편으로 내가 친구에게 뱉은 질문도 떠올랐다. "너는 외롭지 않니" 혼자 사는 건 당연히 외로울 것이라는, 너는 아이가 있는 삶을 모른다는 시선으로 친구를 보고 있지 않았나. 그 질문이 나에게 어떤 파장을 남겼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고 나 또한 내 말에 누군가 상처받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30대 중후반의 여성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비슷한 궤적을 밟아오다가, 아이로 인해 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 것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내가 겪어야 하는 혼란과 어려움이 있듯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친구들도 견디고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 인생은 없냐'는 질문만큼이나 '외롭지 않냐'는 세상의 통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통념,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확연히 알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 주변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모들이 많으면 좋겠다. 아이 곁에 여성의 삶이란 단일하지 않고 얼마나 다채로운지 몸소 보여줄 어른들이 있다면 행운일 것 같다. 또한 아이가 없는 친구들과 공통된 대화주제를 찾지 못해 점점 소원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다음 친구들 모임엔 양육자로서의 내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 이것도 내 인생이라는 것, 양육자로 사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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