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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Sep 05. 2022

체면머리 vs 인정머리

깻잎 논쟁

언젠가 연예인들의 토크쇼에서 나온 이야기다.


-부부동반으로 놀러 가 식사를 했다. 깻잎반찬이 나왔다. 깻잎이 한 장씩 잘 떼어지지않았는데

자기 아내가 먹을 때는 신경쓰지않더니 다른 분의 아내가 깻잎을 잘 떼지못하자 지긋이 눌러주었다는...


이름하여 깻잎논쟁이다.

잘 떼어지않는 깻잎, 자기 아내가 버벅될 때는 신경쓰지않다가 다른 아내, 혹은 여자친구의 친구가 먹을 때는 매너란 생각으로 떼어주었다는 그런 얘기다.


먹여준 것도 아니고 겨우 떼어준것을 질투하냐 혹은

자기 먹던 젓가락으로 깻잎을 눌렀다는 게 더럽다...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깻잎에서 한 술 더 떠 새우까주기

이건  보통 에너지가 아니기때문에 아내, 혹은 여친은 제쳐주고 옆집 아내나 여친의 여사친에게 까주었다면

집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부부가 오래 살면 서로의 성격도 파악되어 왠만하면 싸움거리로 만들지않

대충 상대방에게 맞춰주려 노력한다.

오래 된 부부는 서로를 깊이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서로의 성질을 건드리지말자...란 체념도 어느 정도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간간히 깻잎논쟁처럼 네 이웃에게는 매너요, 배려를 초스피로  보이면서도

정작 아내, 남편에게는 절대 보이지않는 게 있다.

얄밉고 은근히 화가 난다.


지난 번 친구부부팀이 식사를 하는 중. 모자르는 반찬이나 주문이 필요하면

평소 잘 일어나지않는 남편이 벌떡 일어나

" 뭐 필요해? 뭐 달라고 할까?"

솔선수범이다.

커피숍에 간다치면

" 뭐 먹을거야? 진동벨 줘봐. 내가 갔다올께"

또 솔선수범이다.


내 남편만 그런 게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부부가 처음으로 식사를 한 날,

한 남편이 벌떡 일어나 주문도 하고 부족한 음식도 챙겨준다.

나의 친구가 그 남편행동에 어안이 벙벙하다.

" 어머, 평소 절대 안일어나는 사람이 왠일???"


부부팀끼리 콘도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B의 아내가 덥다라고 하자 A의 남편,

" 더워요? 문 열어놓을까요?"

일어나 창문을 열어준다.

잠시 후 A의 아내가 춥다라며 문을 닫아달라고 하자

A남편, 쳐다보더니 "당신이 닫아"

이런 상황, 어느 팀이나 있을 법하다.

 

나의 남편, 자신의 친구팀을 만날 때 다른 모습이다.

다른 남자들은 의자에 껌붙혀놓은 듯 이것 저것 심지어 술을 끊은 뒤로는 대놓고 대리운전까지 담당한다.


그래 좋다. 자기 친구들이니 그렇다치더라도

가족끼리 외식을 가도, 커피숍을 가도

주문과 서빙은 모두 내 차지다.

평소 성격이 급한 내가 양보한다해도

 이제는 나도 쉬고싶다란 생각이 들어

" 당신이 갔다 와, 갖고 와..." 라고 했더니

남편, 바로 거부한다.  

" 난 잘 몰라. 난 어떻게 하는 줄 몰라"


결국  귀가 길 다툼을 했다. 그게 화근이 되어 평소 집안일에 관심없이 미루던 것까지 들먹이며 잔소리를 해댔다.

-평소 나한테 잘해줘라. 재활용에 나가봐라, 요즘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잘한다. 여름선풍기를 정리하거나 에어컨 필터등등도 이제 힘 딸려서 못하니 남편이 해줬음한다등 밀린 얘기가 수북하다.

남편

" 누가 하면 어때? 아무나 하면 되지. 그게 꼭 니 일 내 일을 가려야하는 거야?"

같은 말을 되풀이하다보니 결론없이 감정만 상한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배려하면서 왜 나에게는 안해줄까?


나는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대신 눌러주기도 한다. 타인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려고 한다. 이웃에게 잘 나눠준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기전에는 먼저 끊지않는다. 누가 아프다고하면 며칠 지나 안부도 잘 챙긴다. 재미로 본 성격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점수가 비교적 높게 나온 것을 증거로 보이지않아도 남에게 신세 지거나 민폐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남편은 편하다란 이유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잘 갔다와" 배웅도 하거나 남편보다 먼저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다. 늘어놓음 부창부수, 막상막하이겠지만 늘 내가 더 손해보고 사는 듯한...내가 더 많이 참고 사는 듯한 억울함이 있다.


타인을 위한 배려를 좋게 말해 예의고 매너이나 난 체면머리라고 표현하고싶다.

특히 친구들, 직원들등 내가 필요하고 중요한 사회적관계의 지인들을 향한

친절한 행동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때문이다.


더 소중하나 접촉횟수가 훨씬 더 많은 가족에게는 그 체면머리보다는

인정머리다.

남편이 힘들어할텐데..아내가 힘든데... 아이들이...부모님이.....


꼭 집어 얘기하면 부부간의 배려는 인정머리와 체면머리 모두가 필요하겠다.

그럼에도 덜 표현되는 건 하루 이틀 사는 게 아닌 가족끼리 그 정도는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기때문이리라.


아무리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지만 사소한 말다툼에도 속이 편치않다.

타인에게는 저렇게 잘하면서 정작 반려자에게는 왜이리 꽁해질까

남편도 나도 그걸 못하고 또 바란다.


남자들은 잘 모른단다. 000 해주세요. 000 해주세요라고 꼭 집어 말해라. 그럼 해준단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건 해주세요가 아닌 알아서 하는 건데...

최소한  깻잎 먹을 때 깻잎을 얼른 떼어주는 센스,

이웃집 아내나 여사친이 아닌 나에게 먼저 보여주기를 바랄 뿐인데 그게 쉽지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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