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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Dec 20. 2022

회식의 건배사, 꼭 필요해? 그냥 위하여~잔을 들어요~

연말연시 회식자리가 스트레스란 분들

어제 시내 모처에서 밥 한끼를 떼웠다.

떼웠다란 표현이 어울리는 게

이미 사전 예약한 한 회사의 거~한 송년회가 진행중인 음식점에 겨우 남은 좌석에서

허기를 달래었으니 그렇다.


벽면에 붙힌 현수막

'00기업 송년회' 

8시도 안 된 저녁시간인데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분들의 얼굴이 모두들 빨갛다.


요즘은 소주 도수도 낮아 쉽게 취하지도않는다는 주당들의 말이 있는데

고기는 소주를

소주는 고기를 부르는가보다.


그들의 선점은 이해한다.

송년회의 의미도 이해한다만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콧구멍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다싶었다.

매 잔을 들을 때마다

"000,000"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박수도 친다.

이어지는 건배사에 무조건 박수다.

떠들석한 분위기, 한 해 묵은 감정을 다 털어버리라

남자분들끼리 러브샷도 보인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른다.

" 저는 노래로  대신하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가사지만 내용인즉슨 

"위하여 위하여"가 여러번 나오는 걸 보니

건배사인가보다.


어떤 기사를 보니 건배사때문에 회식이 불편하다고 한다.

모두들 다른 건배사를 준비해야한단다.

식상한 것은 아웃

신선한 것은 오케이

그 것때문에 '센스있는 건배사' 를 포털에 검색하면 주루룩주루룩 많이도 나오더라.


변사또-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만나자
박보검-박수를 보냅니다. 겁나게 열심이었던 당신을 위해
흥청망청-흥해도 청춘 망해도 청춘
오바마-오늘은 바래다줄께 마시자
통통통-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청바지, 당나귀, 지화자...고전같은 개나발까지
수두룩이다. 이렇게 많으니 더 고민이 된다.
뭔가 화끈한 거 없을까? 회식분위기를 완전 고조시킬 그런 명대사? 회사이름이 들어가면 더 좋겠고...
아니, 매번 잔을 들면서 꼭 건배사를 해야하나? 그냥 좀 마시면 안되나?

라떼는 말이야겠지만 내가 회사다닐 때 회식의 건배사는 비교적 높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

" 00부장님, 00차장님, 한 말씀하시겠습니다."


어느 사무실이나 말잘하고 사회잘보는 한 사람이 주축이 되어

이 사람 저 사람 일으켜세워 한 말씀 듣고 건배사 듣고

" 위하여!!!!" 란 합창이 이어진다.


술이 술술술 들어가는 와중에도 사회자는 정신을 차리고 있다.

노래로 흥을 돋구는데만 전념한다. 누구를 시켜야 분위기를 살릴려나

왕고들의 건배사와 노래가 끝나면 전직원의 라이브 생목소리 노래가 이어진다.

" 다음엔 너 순서야" 라고 사회자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평소 나서기좋아하는 끼많은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레파토리가 있지만

그렇지못한 내성적인 이들에게 회식이란 거의 공포에 가깝다.

슬그머니 가방을 밖으로 던져놓고 화장실 가는 척하다 줄행랑~


이러니 여직원들은 회식의 의미를 몰라

이러니 여자들이 사회생활 잘 못한다고하지

이러니 저러니 잔소리와 타박을 들으면서도 다음 회식,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시간대에

또 줄행랑이다.


노래대신 벌주가 연신 주어지는 것도 회식을 두렵게한다.

기억하건대 알콜분해가 전혀 안된다는 직원이 두 명있었는데

한 사람은 그 괴로운 상황을 극복시킨다는 누군가의 강제에 한 잔 마시고 

양말이 벗겨졌는가하면

또 한 사람은 다음 날 출근은 커녕 안경이며 가방까지 다 잃어버려 곤혹을 치렀다고했다.


" 엄마, 저런 거 보면 회사 다닐 때 생각나지않아? 회사생각 안나?"

함께 끼니를 떼운 딸에겐 모르는 사람들의 으샤으샤가 소음이면서도

뭔가 재밌을 것 같은 상황인가보다.


" 기억나지. 왜 안나?"

노래시킬까봐 덜덜덜

부장님, 차장님옆에 앉히려는 00대리님때문에 덜덜덜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장님 차장님옆에 앉히기에는 내가 다소 밀리는 외모라 그런지 대기표도 없었다.


심지어 2차노래방에서도 내 이름을 부르며

"000야~너는 노래해" 라면서 다른 여직원들과는 부르스를 연신 추었던 부장님!!!


다음 날 전 여직원이 부장님의 슬그머니 나쁜 손을 뒷담화를 했을 때

나는 노래한 기억밖에 없다는 현실이 웃프기도 했다,

의문의 1패란 말이 그런거였을까


그나마도 이제는 왕년에, 한 때, 예~전에란 수식어를 버릴 수 없다.

건배사때문에 스트레스받아요란 기사제목이

나처럼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들에게는 부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회식을 할 수 있다는 그 '소속감 '


오랫동안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남편도

한 날

" 아휴 지켜워. 회식, 매일 똑같은 장소, 똑같은 메뉴, 똑같은 사람들"

그 말에 나는 진정 화를 냈다.

" 당신말야, 그 회식하는게 얼마나 부러운지 알아????? 나도 그 목걸이 매고 회식하고싶단말이야!!!!"


생각해보니 회사 다닐 때 업무의 완성도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조금 더 신경쓸 걸 그랬다란 아쉬움이 더 크다.

일은 잘해봐야 도진개진, 

자기 월급받은만큼은 연수가 차며 그만큼 해내게 되어있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않았던 것 같다.


회식자리에서 평소 말을 나누지못했던 이에게 술잔도 권해보고

꽁했던 사람에게도 술잔을 건네보고

술자리니  가능한 진실토크도 좀 해볼걸...이란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 분들과의 일잔일언이 대단한 영향을 주는 건 아니겠지만

앉아서 먹기바빠, 남이 하는 노래며 건배사에 웃음도 박수 치느라 바빠

적당한 시간대 도망가기 바빠


나의 건배사는 걸걸걸이다.

할 걸, 말할 걸. 권낼 걸, 마실걸, 도망가지 말 걸...더 잘할 걸...

에.이... 진짜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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