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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종점의 추억

1. 빠른 생일자가 아래서 안좋다

by 유원썸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2월생들은 일곱살이란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조기입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 우리보다 한 살 어리대"

" 형이라고 불러, 언니라고 불러"


학교생활뿐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서도 빠른이냐 늦은이냐 이 것으로 위아래 서열을 복잡하게 만들곤했다.


빠른 2월생인 나 역시 조기입학을 했다.

어머니는 멀리보고 계획한 것일까

아마도 막내였던 내가 집에 있는 게 성가셨던 모양이다.

당시 우리집은 산동네였다. 왠만한 인프라는 아랫동네에 위치해 살기엔 부족함이 많은 산동네

그럼에도

그 지역에서는 제법 잘사는 측에 속했다.

검은 색 피아노가 있었다. 김장을 한다치면 백포기를 넘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피아노가 있는 집은 우리집 한 집이었으니 산동네치고는 부자가 맞다.


학교는 산을 내려가 이렇게 저렇게 한참을 가는 어딘가에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가는 길은 전혀 알 수 없다.

처음 몇 번은 언니와 오빠를 따라갔겠지만 영글었는지 귀가는 혼자했다. 그것도 수업도중에.

형제들을 따라 학교에 가는 것은 즐거웠지만 학교수업은 도통 따라가지못했던 것 같다.

재미있고없고가 아니라 이해가 안되었다.

겁도 없지

수업이 끝나지도않았는데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 다음날은 학교에 가는 척하다가 딴데로 빠졌다.

처음 며칠은 걸리지않았으니 일주일을 더 자기주도적인 생활을 했었다.


마침내 꼬리가 잡혔다.

"이노무 기집애, 학교 안갔어?'
어머니는 눈이 엄청 크셨는데 화가 나면 그 눈은 얼굴의 반이다.

호랑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처음엔 화를 내셨고 이내 재미가 없다란 내 말에 웃으셨다.

" 너무 일찍 보냈나?"

그도 그럴 것이 6형제중 오직 나만 일곱살에 조기입학을 했으니 어머니도 긴가민가하신거다.

내가 경험자로 단언컨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조기입학의 후유증은 확실히 있다.

사회생활할 때도 본인은 일곱살에 입학했다며 한 살위의 선배에게 말을 놓느니마느니 투닥거린 적이 있다.


어찌되었든 간 어릴 적 학교는 어마어마하게 커보인다. 어른이 되어 찾아가보면 이렇게 작았나 놀라지만

내가 다닌 학교 운동장은 백미터 달리기가 가능할 정도로 넓었고 쉬는 시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놀았다.

교실은 콩나무시루였으며 교실과 복도바닥은 이가 듬성듬성 나간 마루였다.

선생님 얼굴은 기억나지않은데 손은 기억난다.

풍금을 치던 손가락부터

내게 책을 건네고 긴 막대로 딱딱딱! 손바닥을 때리던 그 손 말이다.

어떤 손은 두툼하고 어떤 손은 물한방울 안묻힌 것처럼 고왔다.

어떤 손은 백묵분필에 하얗고 어떤 손으로 막대를 내리칠 때 아주 매웠다.


어느 한 날, 학교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었다. 앞의 학생이 뒤로 넘기고

내가 그것을 받고 또 나머지는 뒤로 넘겼다.

맛있게 다 먹고 난 후 선생님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자기 우유가 없다고 했다.

"그럴리가 없는데..."
우유와 빵은 전학생이 먹는게 아니라 사전에 신청자, 즉 돈을 낸 아이들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학교길은 내가 혼자 다닐 수 있을만큼 영글었지만 먹는 것 앞에서는 그렇지못했나보다.


" 누가 먹은거야? 엉?"

지금같음 신청자명단이라도 들여다봄 바로 나올 범인(?)이지만 선생님은 누가 먹었냐며 재차 물으셨고 모두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눈치챘다. 그러나 차마 손을 들지않았다. 결

국 선생님은 그 학생을 달래고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나의 간은 콩알만해졌다.


아마 그 우유해프닝이후로 눈치가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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