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전쟁이 아닙니다

by 유원썸

지인들의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유행되는 영화다.

뭘 볼까?

조커를 볼까? 아님 82년생 김지영을 볼까?


대화 가운데 답은 정해졌다. 둘 다 내 취향은 아니라고.

82년생...을 본 지인들이 댓글중 으뜸을 말해준다

" 공유라면 충분히 살거야.뭐가 문제야? 공유인데...ㅋㅋ"

영화의 메세지는 온데간데 없고 결국 주연배우만 남는다는 말에 웃었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좀 크게 했는데 여러 친구들이 모였다.

처음 본 친구, 보고싶었던 친구, 늘 보던 친구등등

나이가 드니까 좋은 점은 내숭이 없다는 거다.

처음 본 친구가 말했다.

자신은 미스라고...

결혼안한 것은 후회안하다고

제일 후회되는 건 아이를 낳지않은 거라고.

그 때 낳어야 했는데

처녀때 들었으면 와 대박 대박 왕대박 고백이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그녀를 잘 안다는 누군가가 거들었다.

맞아, 그 때 내가 결혼하라고 했잖아.

걔한테는 미련없다. 그 때 아... 애를 낳어야 했는데...어쩌구 저쩌구..


아무래도 사연있던 연애였나보네.

계속 만났던 친구가 아니었기에 이야기는 거기까지였고 다른 친구들도 그닥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에 던진 말이 모 연예인의 혼자 아이를 가지고 낳고 기르기였다.

당시로써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고 호불호가 쾌 커서 응원이 있었는가하면 반대도 만만치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쨋든 지금은 꽤 장성한 자식일테고 어떤 과정이든 귀한 생명 귀한 모녀지간일 것이다.


대부분의 솔로양육자에게 보내지는 시선이 그러하듯

나역시 두 사람이 해 낼 몫을 혼자 해내가기가 쉬운가란 안타까움이 있었다.


책과 영화이야기는 좀 다르다고 하는데 난 82년생도, 82년이 의미있는 해도 아니어서 공작가의 작품에 별

관심이 없다.

82년은 교복자율화가 시행되었고 82년 학력고사는 엄청 어려운 요즘말로 불수능이어서 스카이가

보통 스카이가 아니었다...로 기억한다.

82년에 태어난 조카나 후배들과 지금도 일반적인 대화를 꽤 오랫동안 할 수 있으니 그 연도에 큰 의미는 없어보인다만 육아는 다르다. 정말 다르다. 대화가 잘 되지않는다.


그들보다 10여년 넘게 앞선 나때의 육아는 남편이 혼자 벌어도 먹고 살 수 있었고 일하는 여자보다 집에 있는 여자가 많아서 나혼자 격리되고 능력없고 도태되는 기분은 미미했다.물론 일하는 여자가 능력있어보이기는 했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와 밥을 먹고 아이가 유치원, 학교에 가도 주변에는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이 상당했기에 백수가 과로사한다란 말처럼 바쁘게 살았다.

왜냐? 아줌마들의 시간은 아이가 유치원과 학교에 가있는 아홉시에서 오후 두,세시까지 여섯시간정도가 다였다.


"직장 안다니고 집에 있는 엄마 손들어봐~"라며 담임샘이 물어보면 손을 높이 든 아들덕분에 녹색어머니회, 일반어머니회, 심지어 장학사가 온다며 학교청소를 부탁받았을 때도 별 저항없이 했고 해줬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한다?는 절대 아니었다. 자식을 볼모로 여기던 시대까지는 아니지않나.

아주 아주 미안해하시는 샘들이 아이에게 칭찬스티커를 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저학년때까지의 이야기다.

엄마들간의 활동은 나름 소셜도 만들어지기에 꼭 아이만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자식을 빙자한 과잉충성이라는 직장다니는 몇 몇 엄마들의 지적은 좀 거슬렸다.

"집에 있으면 당연히 해줘야지, 나도 집에서 애만 보고싶다."

"헐~"




나도 수퍼우먼이었다. 잠이 덜 깬 아이와 어린이집 노란 가방을 들쳐업고 2층계단을 수퍼우먼처럼 뛰어올라가서 후다닥 내려놓고 뛰다시피 출근했다. 근무시간에는 아이생각을 않다가 이상하게 퇴근시간이 되면 머릿속이 하애져서 동료의 농담도 건성건성 듣게 되고 남편과 나 둘중에 누가 아이를 픽업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아이와 녀석의 가방과 내 핸드백과 쇼핑백까지 양손 가득 들고 장까지 보고오면 손목에 비닐 봉지 자국이

남는다. 그게 무거운지도 몰랐다.

세탁기를 돌리고 어지러진 집안을 치우고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가면서 식사준비를 한다. 돌아서면 어지럽히는 아이에게 짜증이 나고 야단을 치고 다시 우는 아이를 달래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베란다에 걸린 빨래를 걷고 돌린 빨래를 넌다. 꼭 한짝이 없어진 양말때문에 더 시간이 걸린다. 내일 먹을 반찬도 대충 다듬어놓아야 한다. 일을 다했나싶었더니 목욕탕에 젖은 수건이며 옷이며..아, 몰라 저건 내일하자.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기 전의 생활은 일주일 내내가 이런 반복이었다.


그렇게 힘든 수퍼우먼을 내려놓고 집에 들어앉은 첫 날, 난 깨달았다.

" 회사일이 육아보다 쉽다" 는 것을.

약 한 번 먹이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밥 한 번 조용히 먹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아이가 평소 이렇게

많이 울었나? 책은 끝도 없이 읽어달라 조르고 졸리우면 그냥 자면 되는데 잦은 잠투정에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무엇보다 답답한건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른의 부재였다.

아이와는 이거 할까? 그거 해.하지마가 대부분이었으니 무인도에 온 기분이었다

하루는 너무 졸려서 아이에게 "엄마 깨우지마!!!!"라고 화를 냈더니 움찔한다.

근데 조용하다. 아이가 조용하면 일을 벌이는 거다. 일어나보니 온 집안이 반짝거렸다.

자석인가 원석인가하는 베개속를 다 끄집어낸거다.

작은 알갱이들이 햇볕에 반사되어 어지러운 건지 버럭 화 한 번에 온 보상인지 어지러웠다.

그것을 치우는 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이 많은 게 어떻게 베개속에 있었을까싶을 정도로

삼분의 일도 채 못넣었다. 불가사의하네


속풀이 대상은 남편밖에 없다. 그러나 외벌이남편, 독박육아가 화가 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이는 날마다 사고만 치는 게 아니다.

날마다 한뼘씩 자라고 순간순간 나를 감동시켰다.

울게도 했지만 웃게 만든 날이 더 많았다.

가장 친하고 믿을만한 양육자에게 그 나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해줬다.

아이가 아플 때는 어떤가 나때문에 아픈가싶다

내가 애 하나도 못보는가란 자괴감에 울고 울면서도 비로소 친정엄마에 대한 고마움도 알게되고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그 과정의 1000분의 일도 못 본 남편이

" 내가 다 먹고살라고 바쁜거지, 뭐 내가 노는거야?" 라며 은근스레 독박육아로 미는 남편의 말이 화난다.

심지어 안쓰럽다.

어느 날, 훌쩍 커버린 아이들, 제일 효도한다는 그 어릴 때의 추억을 당신은 놓치고있다.


수퍼우먼도 겪어보았고 독박육아도, 집에 있는 엄마도 다 해보았으니 말할 수 있다.

"아이볼래, 밭일할래?"라고 물어보면 82년생이 아닌 82살의 시골어르신들도 밭일이라고 말한단다.

육아가 어디 쉬운가? 오죽하면 육아전쟁이라고 표현하는가?


결혼도 아이도 낳지않은 솔로가 "지금이라도 애하나 있었으면..."라고 아쉽게 말하지만 그건 말 잘 듣고 예쁘게 잘 자란 아이를 봤을 때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난 밭일대신 아이 볼 것을 선택한다.

밭일 안해도 먹고 살만한가보네. 전혀 아니다. 외벌이 가정의 반쪽 경제, 가지마 가지마라며

내 다리를 붙잡던 아이가

자기 용돈은 꼭 벌어야 하는 상황에 가끔은 힘들다 토로할 때

회사를 그만두지않았다면 시나리오를 써보기도한다.

그래도 양육을 통해 잃은 내 인생도 있지만 덕분에 생긴 또 다른 내 인생도 있다.

아이는 나를 나답게 만들었고 안정적인 정규직이 주었던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하면 육아와 경제 둘을 고민하다보니 내가 하고싶은 일이 뭔지 깨닫고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다.



먹고 살기위해 절박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는 사치같은 푸념이겠지만

삶은 오지선다가 아니지않나? 정답이 있을리가 있나?


최고의 선택이 있고

차선의 선택이 있고

차악의 선택이 있고

최악의 선택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가장 최고, 최소한 차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게 육아전쟁이라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의미있는 전쟁이 어디있을까?

아이와 싸움? 서른살과 한 살은 같은 체급이 아니다.

82년생도 82살의 어르신에게도 육아는 힘들다.

거기에 "육아"와 "내 하고싶은 일" 병행은 더 힘드니 늘 갈등이다.




82년도 김지영, 도데체 그 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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