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간다

by 유원썸

요즘같아서는 6.25 난리를 겪지않은 게 다행스럽다.

"6.25난리는 난리도 아니네"


지난 1월 말 이집트란 나라를 다녀올 때만 해도 코로나는 저 아래쯤 있던 단신기사였다.

귀국길 경유지였던 아부다비공항에서 폭풍 인터넷을 하고나서야 사태가 심각하구나란 걸 조금 실감했다.

중국사람들 의자빼고는 다리 네개 달린 건 다 먹는다더니 어쩌면 좋아 박쥐를 먹었대나봐라며 혀를 찼지만 그래도 그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했다.


다시 비행기에 오르고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동안 내내 생각했다.

다리 좀 쭈욱 뻗어봤으면...어디 가서 누워봤으면...다음번에는 꼭 좋은 자리 좀 타보자며 온 몸을 뒤척였다.


공항에 내리고 나니 우한코로나가 진짜구나 급 공포감이 들었다.

" 정확히 어느 좌석에 타셨는지 제대로 기록하셔야합니다. 열을 꼭 재고 정상이 아니면 따로 안내받는 쪽으로 가셔야합니다."

한참동안 열을 쟀다. 오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담당자의 얼굴을 보았다. 마스크에 가려진 눈빛이 무섭고 낯설다.

그렇게 오고싶던 내 나라 내 땅인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며칠 후 코감기가 걸렸다. 늘 그렇듯이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났다.

병원에 갈까했지만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먹으면 7일이란 말을 떠올리며 비타민과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매일 열도 체크했다. 36.5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은 '최근에 해외다녀 온" 이력을 말함과 동시에 꼬일 것 같은 심란함이었다.

다행히 코감기는 딱 일주일이 지나자 멈췄지만 이후 코로나는 핸드폰에 비명을 질렀다.


미지의 확진자가 밝힌 동선에 긴장이 되고 내가 사는 동네로 점점 가까이 온다는 공포감 그리고 서른번 째 이후의 정적에 마스크를 풀었다. 그 다음 환자가 지방에서 나왔고 이후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확진자에 핸드폰은 또 비명을 질러댔다.


1천원하던 알콜과 1천원이 안된 마스크때문에 약국은 불이 났다. 사람들은 뿔이 났다.

마스크가 준백신처럼 여겨져서 하루에도 수차례 마스크부자의 지갑패러디사진이 오갔다.

나와 같은 비정규직들은 무노동 무임금에 통장잔고를 확인해야했다. 유흥비는 안들지만 식비가 장난아니게

든다. 줄어드는 냉장고 재고량, 늘어나는 요리솜씨에 웃음이 나오지도않는다.


창밖을 보면 세상은 그대로인듯하다.

버스도 지나가고 신호등도 정해진 시간에 잘 켜진다.

싸했던 3월의 기온도 작년 그대로다. 바람이 분다. 봄바람이다.


변한 건 없는데 학교 직장 무너진 일상에 사람들은

당황하고 허둥거리고 무엇보다 활기를 잃었다.

반가운 지인들과의 인사도 눈깜박으로 대신한다.


바늘구멍처럼 어려운 취업의 하나인 항공사 승무원의 월급이 반토막이 나고

발만 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했던

그 큰 비행기안의 승객이 채 10명이 되지않았다란 지인의 최근 말이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단 두 달만에 벌어졌다.

이집트에서의 걱정이라곤 '화장실 언제 가나, 깨끗하나 더럽나'가 다였던 게 사치였나싶을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전시 그 자체다


의도치않은 강제휴식기간에 '암살'이란 영화를 보았다. 전에 본 영화인데 너무 새롭게 느껴진다.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채 읽지못했던 기간, 년.

우리가 외웠던

1910 한일합방

1945년 해방

역사는 왜 조선이 망하게 되었으며 어덯게 극복했는가가 촛점이겠지만

35년간 일제하에 살았던, 특히 해방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1930년 즈음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떻게 견뎌내고 서로를

위로했을까

그 때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눈에 보이는 적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지금의 바이러스전쟁으로 2020년 2월.3월이 없어진것같은데 35년을 말잃고 귀잃고 나라잃고

어찌 이겨냈을까 생각하니 먹먹해진다.



이 현재의 전염병과 일제강점기 35년을 비교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적과의 싸움은 고전이고 을 알 수없다는게 고전이다.

특히나 끝이 보이는 것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사기진작이 다르다.

그래도 그 끝이 너무 멀다면 모르는 게 약이겠다싶다. 사기가 급 떨어진다.


누구도 예상못했던 상황

누구도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

아군이었던 지인이 확진자 혹은 격리자가 된 순간 적군이 되었다.

저만큼 마스크를 쓰지않은 사람이 걸어오면 고개를 숙이고 거리를 넓혀본다.

그건 그도 나도 같은 입장이다.


중국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쓰는지 비교가 안돼~!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명동의 화장품가게도

중국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때문에 보통 고전이 아니다.

아군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적군이 되고 또 아군이 된다.


어떻게든 견뎌내야지. 지난 역사가 모두 시작과 끝이 있듯이

어떻게 시작되고 극복했는지를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지금의 암울한 비명소리도 언젠가 그 끝을 보일테지.

언제쯤 끝나를 궁금해하지말아햐겠다.

너무 멀면 너무 암울하다.

내일이라도 당장 백신이 나올 것처럼 기대하고 싸우고 견뎌내야지



사방이 적인 것 같으나 싸울 의도는 전혀 없다.


진짜 적은 사실 보이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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