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행사로 핀란드로 떠나게 된 지난 겨울,
"핀란드?"
첫 마디가 그랬다.
자일리톨과 편백나무말고는 달리 해당나라에 관해 아는 게 짧다보니 대화도 짧다.
행사외 일정에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가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넘버원으로 오로라를 꼽는다.
"오로라?"
무지개와 맞먹을 신비한 오로라를 눈앞에서 보다니! 부럽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하고 간 핀란드의 오로라는 현지사정으로 못보고 대신 순록을 보고 다른 액티비티를 했다는데도 생애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친 걸 못내 아쉬어했다.
유명하다는 자일리톨 흑색 껌을 사왔는데 아주 아주 맛이 이상하다.
특이하고 몸에 좋다해도 도저히 남에게 선물은 커녕 권하고싶지도 않다. 무서운 맛이다.
그래도 산타의 순록을 보았다니 믿기지않는다.
자식,출세했네~~~
살다보면 꼭 있어야 할, 꼭 가져야 할, 꼭 가봐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른바 머스트 해브 머스트 씬 아이템들이다.
5초가방, 지ㅇㅇㅇ의 한정판 슈즈, 나이스한 차, 마추피츄, 피라미드같은 불가사의, 타이타닉영화.눈을 뜰 수 없는 이과수 폭포등이 있는가하면 적당한 돈(마르지않는 화수분과 같은?)과 머무를 수 있는 집이 그 예일게다.
집..
결혼할 때 우선적으로 세운 계획이 집보다는 여행이었다.
집은 소유가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터였다.
덕분에 여행은 가볼만큼 볼만큼 해봤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낭도 해봤고 팩키지도 해봤고 반팩키지, 현지인찬스등의 다양한 방법도 시도해봤는데 역시 여행은 베낭이
제일 기억이 남는다.
집에 대한 집착이 생긴 계기는 여럿중의 한명. 그 집주인의 거만한 태도였다.
" 유리창 하나 깨어져도 전세사는 사람이 물어내야합니다."
당연합니다~~압니다!
집주인의 카랑카랑한 한 마디가 일명 개존심을 확 건드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더니...'
어릴 때 전세에 여러 번 살아보았는데 친정어머니가 제일 싫어하는 게 못질이었다. 벽에 낙서, 테이프 같은 것도 붙히면 손서레를 치셨는데 집주인이 싫어한다는 거였다. 특히 못질은 벽에 금간다란 생각이셨는데 예쁜 액자며 붙혀놓을 게 많았던 학창시절, 어머니의 눈치가 아닌 보지도못한 집주인의 눈치를 저으기 봐야했다.
집주인의 당연한 엄포에 여행을 드문드문 가는 대신에 열심히 모아 집을 샀다. 집은 100프로의 쌈지돈이 아닌 얼마간의 종자돈으로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집부터 사고 이왕이면 인서울, 이왕이면 강남과 가까운 지역을 선호해야하는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지금 푸하하~~푸하하~~~웃음이 절로 나오고 안먹어도 배가 부를텐데 우리 부부는 밖으로 돌기만 알았지 너무 현실감이 떨어졌다.
집이 있으니 되었다. 두 다리 뻗고 자도 되겠다했는데 몇 평입니까? 한 채만 갖고 있나요? 집 외에 또 다른 재테크는 무엇을 해놓으셨나요? 어디 땅을 가지고 계신가요? 노후 연금은 어떻게 잘 준비해놓았는가요? 란 질문을 드물지않게 받는다.
집 하나 말고도 또 해놓아야 할 게 있다구? 나이 먹어 주택담보연금을 받으면 되지않을까란 생각에 질문자들은 " 노우, 노우"을 외친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애인은 있나요? 왜 결혼안하시나요? 결혼하면 왜 아이를 낳지않나요? 하나면 둘째는? 과 같은 꼬리물기 질문이 끝도 없는 것처럼 집이 있어도 주변인들의 호기심은 끝도 없다.
자랑도 아니지만 난 상대방의 개인사 특히 재산에 별로 관심을 갖지않는다. 묻지도 않는다. 좋은 차 좋은 집에 사는 이들은 그냥 부자이려니 추측만 할 뿐이다.
" 이 사람 부자야~" 라고 부자옆에 앉은 사람이 거들면 추임새는 얼른 해준다.
" 오~역시. 어쩐지 후광이 있더라구. 이런 코가 재복이 있다더니 정말 맞는 말이네." 라고 엄지척도 해준다.
진짜 프라이빗한 개인정보를 묻는 것도 실례지만 관심이 없는 게 절대 아니다.
듣다보면 쳐지는 내 자신이 싫어서가 더 솔직한 대답일게다.
쉽게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건 머스트해브아이템이 아니다.
명품백? 돈있다고 바로 지를 수 있는가?
하나있음 끝인가? 것도 아니다.
사람은 어떤가?쓸만한 애인하나 만들기 얼마나 어려운가
결혼은 또 어떻고 집하나 장만하는 것도 진짜 발바닥에 땀나게 달려야 겨우 얻어지는 게 아닌가
여행을 좋아해도 갈 수 있는 시간도 기꺼이 내야하고 돈도 마련해야하지만 현지 볼거리를 왠만큼 보고 오는 것도 얼마나 발품을 많이 팔아야하는지 모른다.
지금은 여행? ㅇ자도 꺼낼 상황이 갑자기 왔다.
비행기가 정말 공중에서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코로나가 준 충격은 너무 크다.
어떤 기사였는지 권위있다는 누군가가
"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으로 인류는 돌아갈 수 없다"란 예언도 했다는데 과연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심지어 출장이나 유학, 연수같은 머스트 일정도 자유롭게 갈 수 있는지조차 추측하기 어렵다.
산을 무지 좋아하셨던 친정아버지는 비행기를 무서워하셨다. 집이 제일 좋아라고 하셨다. 아내는 외국에 보내면서 당신은 비행기를 안타는 아이러니였지만 여하튼 평생 해외여행, 미국에서 살고 있는 딸집에도 안가보셨다.
" 그거 보면 뭐하냐?"
''히말라야 산도 보시고 록키산도 보시고 나이아가라 폭포는 또 얼마나 멋있는데요~" 라고 여행을 추진해도 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
" 그거 안보면 어떠냐?" 하셨다.
아버지가 국내 가보지않으신 산이 없을 것 같다. 산을 가시려면 버스타고 그 동네까지 가야하니 전국 일주도 더불어 하셨던게다.
어릴 적 우리나라보다는 무조건 이국, 여행지하면 외국~국내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로 과소평가했던 나의 근시안에 정말 힘들게 불가사의하다는 피라미드를 본다고 신나서 달려가 보았지만 그냥 대단하다란 말외에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거나 그 것을 본 계기로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
이렇게 여행끝나고 한 번 더 가봤으면이나 그 곳의 냄새조차 그리운 일명 여행후유증이 없던 것도 첨이다.
몇 달 계속되는 전염병으로 심신이 거덜나다보니 내가 그것을 본들 안본들. 피라미드이즈 뭔들이 되버린 탓도 있다.
강제 집콕하면서 아이들에게 원없이 집밥을 해준다. 냉장고안에 있던 검은 봉투가 죄다 열렸다.
안해보던 쑥개떡에 버섯탕수육에 우유식빵에 스콘에 가스렌지와 에어후라이어가 쉴 틈없이 돌아간다.
워낙 레시피가 다양하고 친절해서 못한다 소리를 할 수도 없다.
허리굽혀 쑥을 뜯어오면서 잡초와 쑥도 구분못하는 내가 허-허-허- 헛웃음이 나오고 기가 차고 대견하다.
상추와 토마토, 서너개의 미니 허브도 베란다에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노후 전원생활...까지는 아니어도 텃밭 일구면서 먹거리정도는 자급자족할 수 있겠구나 꿈도 꿔본다.
이 좋은 봄, 날라갈 만큼 신날 수 있었던 2020년 봄의 계획은 모두 사라졌다. 집밥을 편히 먹는 아이들도 계획이 바뀌고 없어지고 화가 나는게 보인다.
일거리가 떨어진 것도 포함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니 억울할 일도 아니다. 안아픈게 최고다하며 쓰담쓰담하며 격려한다.
드뎌 타인의 재산에 관심없던 내가 돈이 떨어지는 소리를 제대로 들으니 어떤 이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궁금해지기까지하다.
아버지 말씀대로 그거 보면 뭐하냐, 그거 안보면 어떠냐
살면서 꼭 해봐야 할 게 있다면 연애, 꼭 있어야 할 게 있다면 나의 건강과 내 옆의 사람이라는걸 눈물나게 느끼는요즘이다.
좋은 집, 차, 화수분과 같은 돈, 오로라, 근간의 금배지와 같은 권력, 명예등은 있으면 더 좋은 아이템이나 없어도 그닥 사는데 지장없는 "보면 뭐하고 안보면 어떠냐?" 와 같은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집콕하면서 가슴이 답답한게 터질 것 같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견뎌온 것 같다.
정말 힘든 여정이니 가장 생각나는 여정일것같다.
지나고 봄 그 때 엄마가, 아내가, 친구인, 동생인, 언니인, 내가 무엇을 해주었는지 두고 두고 기억나지않을까
있으면 좋고 없다고해서 별 문제없는 것들에 집착했던 나를 발견하는 것도 집콕의 결과물이다.
사다리 타기마냥 강제적으로 흘러내려 온 생각이긴 하나 not bad, 나쁘지만은 않다.
많은 것을 잃고보니 미세먼지없는 하늘을 보는 듯, 오늘은 그런 날, 그런 마음이다.
그래도 머스트 잇, 먹는 게 필요하니 이제는 또 집밥을 할 시간이다. 에잇~이건 좀 덜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