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 때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 계셨는데 수학과목이었다.
"오늘 몇 일이지? 12일이지? 그럼 12번이 누구냐?"
그 날, 종일토록 12번은 수없이 불렸다.
반아이들조차 " 쟤, 오늘 안됐다 ㅉㅉ" 란 말을 했었다.
내가 그 12번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 출석번호와 겹치는 날짜에 수학수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친구들의 소소한 일과였으니. 하필이면 2일 12일 22일 모두 수학이 들었네.
먹구름이 몰려온다.
수학선생님이 무서운 이유는 당연히 그 과목에 자신이 없기때문이다.
여학생들은 이과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고
남학생들은 문과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라는 통념은
꽤 오랫동안 상식처럼 고정화되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고 두 반밖에 없는 이과반을 지날 때는 조용~~조용~~공부하는 데 방해된다고 친구도 잘 불러내지않았었다. 전교1등, 학생회장은 늘 거기서 나왔고 대학 진학성적도 좋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회를 해보니 이과반 친구들의 다수는 전문직이었다.
의사가 여럿이고 교수님이 되었고 수간호사가 된 경우가 많아서 은사회 할 때
큰 금액을 쾌척하는 큰 손 여럿을 보았다.
문과이면서도 우리는 화학과 생물을 배웠고 수헤나베~화학 기호를 외우는 것까지만 쉬었다.
이과친구들도 정치경제, 인문지리를 배웠고 특히 고전, 한자를 싫어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문이과의 구분점은 물론 수학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다양한 전공자들은 술을 마시느라 그런 극과 극을 토론할 시간이 없었지만 간간히 이 친구하고는 말이 잘된다 혹은 잘 안된다란 느낌을 받곤했다.
난 그것이 그와 나의 성격차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회에 나와 많은 만남을 통해 알게 된 건 배움이 통하고 말이 통하면 생각도 비슷하리란 속단이었다.
행정, 법학, 경영,경제학과가 99프로인 내 첫번 째 직장 회식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 수학때문에 힘들었어....수학은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법학과 가라고 해서..."
등등의 여러 사연끝에 누군가 쾌재를 부르는 한 마디를 했다.
" 취직은 이공계 애들이 잘하지만 결국 제일 높은 자리는 누가 차지한다?
기본이 경영이야 경영, 문과생이라고~"
자리에 있던 모두가 문과생이니 파안대소를 했다.
수학을 못한 설움이 한 번에 날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수학, 그게 뭐라고말야 학창시절, 수학선생님하면
절레절레 했을까?
문과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배움이 비슷하다고 생각이 비슷한 게 아니구나....를 절실히 깨달으며 산다.
나로 끝나고싶은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전이될까봐 초등학교때부터 급히 서두른 게 수학이다.
눈00이, 구0,
"계산을 못하면 따라갈 수가 없어요."
학습지는 기본, 수학적 머리를 개선시킨다는 유태인들의 놀이게임, 그리고 일반 학원까지 수학을 위한 투자가 만만치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수학 아니 계산을 너무 너무 싫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왔다.
아이의 학습지가 이상하게 얇다싶었는데 페이지가 안맞는다.
너무 너무 하기싫으니 중간에 몇 장 찢어버린거다.
선행이 극에 달한 초등학교 6학년 때 악마라는 별명이 붙은 과외샘을 소개받았는데 그와 공부하면 1년 내 초등학교 완전복습과 중학교 완전선행이 보장되었다. 물론 시키는대로만 하면이란 단서가 붙지만.
친한 친구들끼리 성실하고 공부 할 정예팀을 만들자는 건의를 받았을 때 친구냐? 공부냐? 적잖은 갈등이었다.
아이의 결정은 노우였다. 속이 탔다. 그 샘과 공부를 한 친구들이 일취월장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괴로운
속내가 드러날까 애써서 감추기도 했다.
다행히 이후 재밌는 수학 선생님을 만나 좋아하게 되고 잘하게 되고 이과를 선택하고 이공계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수학 멘토링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학습지 몇 장 떼어 낸 것을 알고 혼낸 것이, 계산이 틀리면 올라간 눈, 찢어진 눈이 되었던 게 진짜 미안하고
미련스럽다.
잘 알지못하면 나서지않는게 좋을 듯하다.
이과인 아들이 말했다.
" 왜 나만 이과지? 온 집안 훓어도 다 문과인데."
그도 그럴 것이 친가 외가 서른명이 넘는 친족중에 이과는 단 한 명이다.
덧붙혀 녀석이 회상하기를 고1때 친구들과 말이 잘 안통해서 재미없었는데 2학년 진학때 보니
반아이들 대부분이 문과로 갔다는 거다.
인터넷에 돌고도는 사진중에 문과비하 현수막이 나름 명문대학에서 버젓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내가 다닌 직장 회식때 직원들이 내뱉은 말, "취직은 이공계, 고위직은 결국 문과"라는
농담도 어찌보면 이과비하적인 발언이겠다싶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jtbc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모든 문 이과생들의 끝은 치킨집이란
황당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다.
한 집 걸러 하나인 치킨집이란 현실과 취직도 어렵고 유지도 어렵다는 진짜 현실.
아이의 성향을 고려해서 철저히 구분하고 깔맞춤 가르쳐봐야 똑같은 말로(末路). 슬프다.
인문학을 모르는 이공계도 뒷심이 없고
수학 과학을 간과하는 문과도 답답하다.
제일 좋은 건 이공계를 전공으로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아주 아주 잘하는-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경영을 복수전공하는 게 엄지척이라고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조만간 문이과 통폐합을 한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든간에 배우는 모든 과목을 성적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같을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고보니 문이과에 큰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든다.
좌뇌형과 우뇌형을 굳이 이과 문과로 나눠야 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와 잘하는 분야가 꼭 일치해야하나란 의문도 생긴다. 좋아하는 것도 강제로 배우다보니 싫어지는 이상한 현상.
수학이 이렇게까지 어려워야 하는 이유, 영어가 구어가 아닌 문어적으로 편중 검증해야하는 이유,
책을 좋아해도 국어성적이 낮은 이유, 과학에 관심이 있어도 성적이 나쁘면 기회조차 없는 이유
이 모두의 답은 누가 풀 수 있을까? 이과? or 문과?
문이과의 결정이 수학이 아닌 과학적 사고라는 설도 있는 가운데 수학을 못해서 혹은 잘해서 문이과를 결정하고 그 때문에 인생도 연관성있게 결정되었다.
20-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방법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 문과형으로 키워야 할까 이과형으로 키워야 할까
그도 저도 아니면 무과형, 그것도 아니면 착한 동네형으로도 키워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