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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Aug 22. 2020

아버지속옷은 못 빨아도 상사 속옷은 빨 수 있다?

군대를 두 번 가는 악몽을 꾼다면서 군대얘기만 하면 화제가 끊어지지않는 남자들, 희한하다.

그들이 하던 이야기중 하나가 이거였다.

" 야, 아버지빤스는 못빨아도 상사 빤스는 빨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들었다.

agree, agree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말도 있다.

" 상사가 시키면  가랑이아래로도 기어들어갈 수 있어야 해"


남편이 자기 직장에서 대리란 명함을 쓸 때였나보다.

공연티켓이 여러장 나왔다며 유효기간은 일주일, 아무때나 가면 된다했는데 우리가 가던 날, 사장님 부부가 오신게다.


1번, 왠일~? 눈도장을 찍을 절호의 챤스!!!

2번, 하필이면, 하고 많은 날, 모처럼 외출하는데!!!


남편은 1번일 수도 있었겠지만 난 2번이었다.

하필이면!!! 나의 복장은 너무 가벼워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설마 공연후 커피라도 마시자는 건 아니겠지싶었는데

머피의 법칙마냥 공연이 끝나고 사장님은 그 날 주변에 앉은 부하직원 부부들과 뒷풀이를 가졌다.

정말 하필이면 그 쪽 아내분은 아주 우아한 차림이라 나의 것과 너무 비교되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사장님을 아주 아주 어려워했다. 평소 회사얘기하면 늘 사장..즈음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나도 더불어 좌불안석이었다.

운전사분이 오시고 사장님 내외분이 차에 오르고 남은 직원 부부들이 인사를 하는데 제일 오래동안 하는 직원이 있었으니 바로 내 남편이었다.

어찌나 인사를  꾸벅꾸벅하는지 오뚜기모자같았다고 이후 남편의 인사법을 표현했는데 딱 그랬었다.

" 그런 사람이었어? 오~손가락에 지문이 없겠는데? 아버지속옷은 안빨아도 상사 속옷은 빤다더니 그런 거였어? "

아부와는 좀 거리가 있는 남편인지라 그의 살아가는 법은 이런건가

인사를 많이 하는 남편이 낯설었다.  

나도 직장생활하는 아랫사람인데 상사, 특히 사장급의 직책을 가지신 분들이 편하지는 않다.


내가 다녔던 은행에서 최고봉은 당연 은행장.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

나와 일행이 먼저 엘리베이트를 타고 내려가는데 "띠링~"00층에서 문이 탁 열리더니 키가 자그마한 분이

수하직원들과 대기중이었던 것.

수하직원들은  나와 일행들을 보고 눈짓으로 얼른 내려란 신호를 보냈다.

은행장님이 "그냥 같이 타고갑시다"하며 우리의 하선을 막았다.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드라마처럼 정지 정지 정~지였다. 왜그렇게 오래 걸리는지...

심지어 00층에서 눌렀는지 문이 열리고 은행장인 것을 보고는 눈을 동그렇게 뜨며 헉! 했던 직원도 있었다.

뒤에서 웃음참느라 엄청 고생했었다.

 

교장이 된 친구가 말하기를

" 그렇게 되고싶은 교장이 되었는데 외로워. 내가 밖으로 나가지않으면 교직원들을 볼 수가 없어.

결재서류는 쌓여있지. 밖에서는 하하호호 웃지. 그래서 간간히 나가 한바퀴 휙 돌면 교사들이 어려워하지.."
지점장이 된 지인 역시

" 아침에 결재서류 다 결재해주면 나가야 돼. 직원들이 불편하게 여겨. 지점장실만 지키고 있음 뭐하냐? 영업하러 다녀야지. 바쁜 날은 지점장실이 식당도 되어줘야지. "


그렇게 오르고싶었던 나무에 올랐더니 정말 좋을까? 그 목표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살 이유가 없었던게 아닐까?


남편이 그렇게 꾸벅꾸벅 인사하던 사장님은 갑작스럽게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후 3명의 후임 사장님이 오고 가기를 반복하면서 남편의 사장울렁증도 전같이 않는 듯했다.

우리를 뜨악하게 만들었던 은행장도 얼마 안가 퇴직하셨고 퇴임후 자녀 결혼식을 치렀는데 사람들이 많이 가지않았다며 정승집비유를 들었던 기억이다.  


윗 사람이 뒷짐지고 한바퀴 순시를 할 때마다 직원들은 눈을 마주치지않으려고 최대한 열심히 일한다.

간간히 쓸데없는 잔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다운 시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상사가 있었는데

" 누가 더 오래 다니는지 보자"며 뒷북치던 직원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자라고 해서, 계약직이라고해서 이런 갑을관계가 없는 게 아니다. 그 정도와 횟수는 전력투구하는 남자나 정규직보다는 덜하겠지만 나름 생존하기위해 더 많은 미사여구를 써야하고 도장찍을 수 있을 때 더 앞에 나가서 인사도 해야한다.


최근, 내가 다니고 있는 일터에서 나는 더 이상 상사속옷을 빨지않기로 했다. 

그 상사가 교장이 된 내 친구일수도 지점장이 된 내 지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사건의 발단은 소통없이 부당한 업무처리지침이었다.

사장입장에서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전년도 직원도 이렇게 해왔다란 관례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으로 세이 노우를 했다.

나도 관례대로 또 내일의 근무를 위해 적당히 예..예 해주면 되겠지만

내가 세이 예스를 하는 순간

나도 또 후임자도 "사장말이면 무조건"이란 속도는

절대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상사들에게 세이 노우하는 직원은 필요없다고 내쳐도

어쩔 수 없다.


상사가 나타날때마다 긴장했던 것도 의미없다란 생각이 든다.

굳이 잘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상사의 옷차림을 보고 적당한 형용사를 찾으려고 애쓰고 

관심사가 전혀 다른 그와 나 사이이건만 그의 얘기를 영혼없이 들으면서도 

기분좋게 리액션 추임새를 쓰며 

웃기지않은데 크게 웃어주려했던 그 외에도 사소한데 

내게는 힘든 노력 몇 가지를 내려놓기로 했다.  

상사에게 존경심이 전혀 없는데 내가 연기를 하고 있더라. 

그것도 오뚜기 모자를 쓴 상태로말이다. 


가끔 내가 하는 일의 어떤 부분은 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계약연장이란 도장을 갖고 있는 분들과의 정치에 

에너지를 더 쏟는게 아닌가

남편의 인사하던 모습이 어색했던 건

우리가 젊은 30대였다.

더 나이가 들었으니 더 많은 오뚜기 인사를 할 수 있을거다?

그렇지않다.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쉬지않고 인사하는 우리네 모습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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