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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Sep 06. 2020

우리 꼭 살아서 만나자

한동안 머스트해브아이템은 없다라고 생각했다.

머스트 해브씬도 없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꼭 먹어야하고 가져야하고 봐야하는 것

그런게 뭐가 중요하나

그거 안본다고 안가졌다고 안먹어봤다고 애들말로

"어쩌라구!"




얼굴의 반을 가린지 반 년이 넘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지쳐간다. 마음의 방역마저 무너질까 조심스럽다.



2020

 얼마나 좋은 숫자인가

올해가 시작할 때만 해도 평생 올까말까한  이집트 여행준비로 분주했는데말이다.

돈을 마련하느라 제일 바빴고 주변에 이 나라를 가보았던 사람들의 정보를 줍줍하느라 바빴다.

잠깐의 외유로 타인에게 맡겨질 강쥐에게 미안해서 매일 밤 추운데도 산책을 시켰었다.

얼마나 오래 비행기를 탔는지 현지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싶은

그런 외지의 첫날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외유는 불평과 놀라움과 기가막힘이 왔다갔다했다.

여행인프라가 너무 안되어있는데다 12년 전 이곳을 다녀 온 지인도 똑같은 불편을 겪었다는 게 황당했다.

그들이 오래 전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에는 입을 다물기가 어려웠고

머니 필요없어라고 접근해서는  우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막 찍고는 1달러도 아니고 10달러를 달라는 그들의 당당하고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  

5달러를 주니 "내가 거지인줄 아냐?" 란 무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우리의 선그라스를 가져가서 써보더니 thank you, madam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나는 와이프가 4명인데 너는 몇 명이냐" 며 좋은 차가 있는데 줄테니 따라오라는데 질겁했다.

그 나라에서 그들에게 오픈된 내내 조이고 또 긴장했다.


스핑크스가 벌떡 일어나 "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화를 내주었으면 바랬다.


"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큰 절을 올리던 노총각 가이드는 일정중에 사소한 불평에 마음이 불편했는지 얼굴에 ㅠㅠ가 그려지더니 급기야는 체했다.  

불평하던 소리가 쑥 들어갔다.  

시작한지 진짜 얼마 안되었다는 그 가이드는 우리 팀에게 뭐 하나 사라고 말도 안꺼내고 못꺼냈다.    

" 결혼하기 힘들죠. 한달의 반은 해외 나가있고, 지금 들어가면 바로 유럽일정 잡혀있어요."

마냥 여행이 즐거운 젊은 청춘들에게는 가이드는 힘든 일이라고, 결혼을 왜 안했냐란 어른들의 질문에는

멋적게 웃음으로 넘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와이파이가 마구마구 터져서 밀린 국내 뉴스를 훓어보는데

그 때만 해도 세계 뉴스의 한 코너였던 중국 우한의 폐렴이었다.


" 중국에서 이상한 폐렴이 돈대..."




계약직인 나는 올 초 부름을 받지못했다.

3월이 4월되더니 5월로 미루어지고 아무래도 상반기에는 힘들겠어요란 거절 소식뿐이었다.

기약없는 내일 모레는 내 밥줄도 그렇고 코로나도 그랬다.

급한 마음에 일용직을 신청했다.이게 어디냐하면서..


장사하던 친구가 가게를 내놓았다. 20년이 넘게 때로는 상한가 때로는 하한가를 쳤었던

그 가게를 내놓았을 때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이해간다.

매매가는 반토막인데 그럼에도 매수자가 없단다.

자주 가던 백반집에는 임대문의가 붙혀있다. 백반집 서너개가 없어졌다.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친구 남편의 안부를 물은 것이 3월이었는데

8월 대구에서 서울 괜찮냐라고 묻는다. 어쩌면 이렇게 한 시 앞도 내다보지못할까




최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는 사람이 자신은 당연히 음성인줄 알았다며

가족에게 말하지도 않고 마스크도 끼지않아 아내와 가족들을 감염시켰다는데

그 아내 역시 또 말하지않은 상태로 일상생활하다가 확진판정을 받았다란 사례를 전해들었다.

가족도 믿을 수가 없는데 주변인, 모르는 사람은 오죽할까?

사람이 무다.



밀린 영화를 보다보니 유럽이며 미국이며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고 추억도 넘쳐나더라.


이국적인 풍경, 건물, 거리. 음식.

탄산수인줄 모르고 마셨다가 당황했던 빨간색 뚜껑의 생수.

아시아인에게 그렇게 무례할 수가 없었던 서구인들.

그러면서 우리 일행의 핸드폰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훔쳐 간 그들.

트램에 자유롭게 올라 탄 큰 개를 조심히 피해가며 내리던 현지인들.

당분간 그 현지를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 무례함마저도 그리운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추억이 사치란 생각도 더불어 든다.

내게는 그리운 에피소드인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다란 그 신참 가이드에게는

돌아가야 할 직장이고 생계이니 그렇다. 가이드뿐인가?

백반집 사장님도, 승무원도, 승무원을 준비하고 있던 취준생도 공연으로 먹고 사는 업체도

가게를 내놓은 친구에게도

먹고 살 생계의 끈이었을텐데.



다시 한 번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기로 했다.

진짜 머스트 해브 씬

진짜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뭔지 써보기로 했다.

뭐부터 할까 무엇부터 해야할까


다음에 하지

다음번에 가면 되지

내일로 미루면 절대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긴 인생이 아닌 올 한 해 그것도 반년도 안되어 깨달았다.


어젯밤 12시가 넘어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아무도 없다.

차도 다니지는다.

뭐랄까 좀비거리도 아니고 베드타운도 아닌데 그냥 나 혼자 있는 세상같다. 갑자기 달리고 싶어진다.

달렸다. 마스크를 벗고 이리저리 미친 사람처럼 내달렸다.  마음이 후련하다.

다리가 후덜덜해질때까지 달렸다. 심장은 터질 것같은데 머리는 그지없이 시원하다.

" 나 살아있어. 난 살고싶다구, 나 여기있다구, 아무도 없는거야? 다들 어디있는거야???"

당장 달리고픈 버킷 하나를 했다.

 

전쟁이나 천재재난영화를 보노라면 등장인물들이 어느 순간 뭉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낫다란

" 동지들, 이제 우리 여기서 헤어집시다. 꼭 살아서 꼭 살아서 만납시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 보고 있을 이 영화,

저 사람들, 끝까지 살거야 살겠지란 믿음으로 편안하게 보겠지. 우리는 등장인물 아니 주인공들이니


" 동지, 우리 꼭 살아서 만나자" 독백하고 또 독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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