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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Nov 27. 2020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이제 좀 눈이 심심해졌다.

지난 주까지만해도 도시는 온통 낙엽잔치로 눈호강, 눈호사를 누렸지말이다.


홍천의 은행나무숲

땅 소유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조성했다는 은행나무숲은 해마다 10월즈음이 절정이다.

물론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운영중지였단다.


제주도의 사려니숲길, 남이섬.

비단 지방뿐인가?

올림픽공원, 하늘공원, 대모산길

서울의 아무 전철역에서 내려도 도시는 온통 울긋불긋에 노랑까지

우리나라의 늦가을이 이렇게 예구나 감탄사가 아깝지않았다.


강쥐와 잘 다니던 동네 숲길.

하필이면 두 갈래길에서 녀석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 어디로 갈까요?"


하루에 한 번씩 늦가을, 그 숲길에서 나도 녀석도 멈추고 한참을 서본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 있었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one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

나는 사람들이 덜 가는 길을 택했다고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 가지않은 길이란 시다.


강쥐와 난 그 두 갈래길, 하필이면 노란 숲길에서 이 시를 반복적으로 읖조리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교실

잘 꾸며진 환경미화구역을 훓어본다.

그 달의 생일자. 독서감상문옆에 미래의 직업상이 적혀있다.

원하는 직업

회사원 회사원 공무원 공무원...

ctrl +c 를 누르기라도 한 것일까

운동을 잘 하는 친구도 있고 웹툰을 잘 보는 친구도 있었다만

그들이 원하는 직업 역시 모두 회사원이다.


 "과학자도 꿈꾸게 해주세요" 란 광고, 혹시 기억하는지.

어린 학생들이 바라는 직업이 천편일률적으로 "회사원"이란 현실을 안타까워했었던

배경이었다.


그마나 문서로 작성한다니 "회사원'이라고 적어낸 그들의 장래희망이지만

그들이 말로 내뱉은 직업중에는 돈 많은 백수, 건물주도 여러 번 나왔다.

어떻게 백수가 돈이 많을 수가 있지?

그러니 건물주를 해야지란 황당한 그들의 논리다.



재벌 2세를 꿈꾸고 돈 많은 아버지를 두었으면...

건물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꼭 어린 친구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재벌 아들을 두었으면 좋겠다...

너는 꼭 부잣집에 시집가서 혹은 돈 많은 집에 장가가서...란 말로 맞받아치는 어른들이다.


그럼~ 돈 없는 우리집에는 누가 시집오고 누가 장가오냐며 쓸쓸한 마무리를 짓는다만

철없는 어린애들부터 철들은 어른들도 안정적인 돈을 주는 직업을 마다하지않는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었느냐고.

지금에야 좋은 직장=높은 임금=은행이 되었지만 내가 그만둘 때만 해도

좋은 직장이라하면 신의 직장이라는 공사와 투자신탁, 증권사같은

제 2금융권을 말하는 거였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신의 직장이 있는가하면

시대가 변해서 신이 버리고 취한 직장도 있다.

없어진 직업이 얼마나 많으며 새로 생긴 직업이 또 얼마나 많은가)


나의 경우는 비교적 직장 동기,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재미있었지만

정작 일이란 영역에서는 힘들고 긴장했다.

숫자=금액,  남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가끔 객장에 나타나는 험한 고객들의 "지점장 나오라고 해!!!" 도 새가슴인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최근 00은행에 갔을 때 이런 고객이 아직도 여전히 있더라.

" 지점장 나오라고 해!!!"
" 내가 지점장이오!!!"

1년 내내 실적으로 내 주변인들을 귀찮게 했고 대출연체, 부실채권안내때문에

연장근무도 자주 했었다만 모두 은행 셔터내리고 한 일이니 바같에서는 모두 불 키고 퇴근하는 줄 안다.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다만 시원함과 섭섭함이 반반이었다.

시간과 업무에 쫒기지않는 자유를 얻은 대신 외벌이로 몇 년을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몇 년을 감수해야했다.

비정규직이다보니 계약기간이 고무줄일 수밖에. 다닌 직장과 업무가 손가락 열 개를 다 써도 모자른다.


  


" 그렇게 많은 직장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

한 직장만 20년을(본인의 말로는 너무 지겹게) 다녔다는 지인이 질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나 은행이 넘버 원이었다.

비교할 수 없는 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 그렇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아이들과 함께 있고 그들이 잘 성장하는 것이지만 일과 직장은 다르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노란 숲속의 두 갈래길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택해 한참을 갔음에도

다시 저쪽 길이 낫지않았나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고

가끔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오류를 많이 범했다.


아이들에게는

"왜 이렇게 꿈이 없어? 회사원이 뭐야? 너가 잘하는 게 뭐야? 하고싶은 일이

진짜 회사원이야? 재미있게 살아야지!  "

라고 그들을 부추기면서도 정작 나는

'그 때 공무원시험을 볼 걸....그 때 은행을 그만두지않았다면..." 랙걸린 컴퓨터마냥

같은 자리에서 게속 반복돌기를 한다.



직업이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 우선이지만

생활이 되지않으면 직업이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생활이 되지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먹기위해서,  돈을 버는 것만이 살아가야하는 이유도 아니다.


- 어때? 이만치 살아보니 역시 돈이, 안정감이 주는 직장이 제일이지않아?


- 그렇게 살고있어? 너가 하고싶었다는 그 일은 근처에도 못가본거야? 당장 숟가락만 잡음 되는거야?

너도 별 수 없이 그저 생활인이었구나...


내 안의 현실과 이상이 적당히 타협하다가도 이렇게 서로를 조롱한다.


왜 하필 그 숲은 노란색이여서 순간 황홀감에 취해 그 선택을 했었는지

다른 길로 가는 샛길은 없었는지

한숨이 아닌 미소로 내가 온 길을 회상할 수는 없었는지...


AND THAT HAS MADE ALL DIFFERENCES.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달라진 길이 틀린  길은  아니겠지

아마도  다른 길을 갔어도

또 가보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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