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나의 직업.
영국인 강사가 메인이고 나는 보조였다.
그에게 나는 크리스티나라고 소개했다.
일하기 싫어했던 선생이었다.
아이들이 대답을 빨리 못하면
"UH...COMMON..COMMON..." 이마에 내천자가 그려지면
난 앞잡이처럼 그의 변죽을 맞춰주던가
아이들에게 잽싸게 가서 상황설명을 해주던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했다.
가능한 나의 간섭을 자제해야하는 데 시간이 갈 수록 옆집 아저씨가
내 아이들을 혼내키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 더럽더라.
내가 출근하지않는 날, 학부모와 그 영국인 강사가
은행에서 마주쳤단다.
" 지금 수업시간인데...누구에게 맡기고 나왔다는 거지?"
내가 출근한 날, 학부모도 내게 하소연을 하고 그 영국인 강사는 내게 그 학부모 흉을 보았다.
영국인과 처음 일해 본 경험,
영국인=젠틀맨이 공식은 아니다.
1년이 지났을까
02-7xx로 시작되는 사무실 번호가 뜨길래 받았다.
" 크리스티나씨?"
"네...어디시죠?"
"(짧은 한숨소리)...여기는 용산경찰서인데요. 문제가 생"
난 거기까지 듣고 철커덕 끊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이구나.
나쁜 일은 저쪽에서 하는데 내 가슴이 쿵쾅쿵쾅 내가 더 두근거리다.
용산경찰서 번호를 찾아보니 걸려 온 번호와 일치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크리스티나란 영어이름을 저장할 사람은 그 영국인 강사밖에 없다.
핸드폰을 잃어버렸거나 번호를 안지우고 핸폰을 넘겼거나..아휴..진짜
가지가지한다싶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걱정이 먼저였을게다.
주변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 욕을 한바가지 퍼붓지그랬어. 야~이 xxxx야, 할 짓이 없어서 그래..."
" 이상하게 알면서도 나도 두근거리더라. 보이스피싱당할까봐..."
" 당하는 사람들 봐봐. 홀리는 것처럼 당한다고하잖아."
여러 반응이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이 급하게 전화왔다.
" 엄마, 엄마 영어이름 진짜 크리스티나야?"
" 왜?"
" 지금 우리 구에 크리스티나냐고 묻고 다니는 남자가 있대"
" 그거 무슨 말이야?"
" 지금 sns에 떴어. 크리스티냐라고 하면 데리고 가고 아니라고 해도 끌고간대."
" 이게 무슨 소리야.. 그 sns 캡쳐해서 나한테 좀 보내봐."
진짜 가슴이 벌렁거리고 영국인이 무슨 범죄에 연루되어 한 때 보조였던 나까지 찾아다니나
내 소설은 벌써 대여섯권을 쓰고 있었다.
잠시 후 딸이 보내 온 sns캡쳐 사진은
are you christian?
야!!!!!!!!!!!!!!! 크리스티나가 아니고 크리스챤이잖아.
내용인즉슨 크리스챤이냐 아니냐 묻고 다니는데 아마도 성경공부로 끌려는 모임인듯했다.
벌렁거렸던 심장을 가라앉히고 다시 영국인 강사를 질펀하게 욕해주었다.
어디에 내 번호를 흘렸기에 ㅉㅉㅉ...
잘 아는 부부일화다.
외국으로 출장가는 길에 급하게 처남으로부터 온 카톡,
" 매형, 갑자기 급해서 그런데 돈 좀 보내줄 수 있어요? 누나에게는 말하지말고요."
하필이면 전 날 부부싸움을 한 탓에 아내에게 처남근황을 물어볼 수도 있고 오죽 급하면 평소
연락이 뜸하던 매형에게 했을까싶어 제시한 금액을 보내주었단다.
출장지에 도착해서야 아내의
" 잘 도착했냐? 혹시 남동생이름으로 뭐라도 오면 무시해라. 해킹당했다더라"
란 문자를 받았단다.
이 후안무치의 처남행세꾼은 얼마되지않아
" 매형 감사해요. 근데 조금 더 보내 주실 수 있나요?" 문자를 보내는 통에 빌미를 잡혔단다.
"고모...잘 계시죠?...급해서 그런데 아빠에게는 얘기하지말고 돈 좀 보내주실 수 있어요?"
란 느닷없는 카톡을 받은 친구.
조카가 걱정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않다가 녀석의 카톡 사진을 보고는 가짜라는 걸 금세 알아챘단다.
" 누구냐? 넌!"
이 답장에 얼른 카톡 사진이 바뀌었다는데 화가 나는 건 둘째요 가슴이 내려앉았단다.
열 사람 한 도둑 못지킨다란 옛말이 있다. 옛날에도 이렇게 신출귀몰한 사기꾼, 도둑이 있었던 모양이다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다. 진화하는 건 아메바만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 엄마, 뭐해? 나 지금 핸드폰이 고장나서...부탁있는데 전화 좀 줘"란 수상한 문자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지만 꼭 딸의 억양과 비슷하게 썼길래 일단 딸 핸드폰으로 해보니
" 엄마, 왜?" 라며 반갑게 맞이하는 내 자식.
문자를 보내주니 나보다 더 놀라면서 호들갑을 친다.
" 우리들은 절대 모르는 번호는 안받아요."
왜 중고생이나 20대 아이들에게는 이런 문자가 가지않을까싶었는데 그들의 철학이 나름
철벽옹성, 원천봉쇄더라.
모르는 번호면 안받으면 되는데 혹시나해서 받다보면 역시나가 90프로다.
그 10프로를 받다보니 엄마, 아빠,삼촌, 이모, 고모가 줄줄이 엮이나보다.
때문에
" 엄마, 아빠, 딸, 아들 이렇게 가족을 저장하지마라. 이름을 쓰던가 아예 거래처라고 저장해라. 단축번호 1번,2번도 위험하다. 328번 이렇게 상상도 못한 번호로 저장해라" 고 조언을 한다.
혹시나 분실되면 내 금융, 보완도 문제지만 내 지인들의 번호가 고스란히 노출되니 그들은 무슨 죄냐는 거다.
그 말도 일리있다싶어 가족, 친척 모두의 관계를 이름 석자로 바꿔버렸다. 그럼에도 내 번호로
" 엄마, 뭐해?"
란 문자까지는 막을 수 없나하더라도 최대한의 예방은 해둬야겠다.
어쩌자고 이렇게 사기꾼들은 머리가 홱홱 잘 돌아가는지 그 머리로 공부는 왜 안되었는지
더 좋은 데 썼으면 칭찬받고 나라를 구했을텐데. 화가 나고 가슴이 철렁거리고 욕을 퍼부을까하다가도
욕도 아깝다싶어 차단을 해버린다.
" 모르는 사람 절대 따라가지마라. 문 열어주지마라, 전화받지마라...."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누누히 당부하고 가르친 것이 결국 가족외에는 절대 믿지마라가 된 셈이다.
이제는 어르신들에게도 비슷한 공부를 시켜야한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가르치고 당부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이 학습이 끝난다고 완결이 되느냐? 도 아니라는게 문제다.
나는 더 이상 영어이름을 쓰지않는다.
아직도 "크리스티나씨? "라고 부르는 나즈막한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 뒤에 한 템포 쉬었던 숨소리.
그도 나도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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