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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원썸 Feb 19. 2021

퍼니시먼트, 때리는 건 아니다! 맞는다고 했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영어를 열심히 배우러 다녔을 때 외국인 강사가 게임 아이디어를 냈었다.

단어 외우기 그런 종류였는데 양팀으로 나뉘어서 

"많이 맞추는 팀에게~ 뭐할까?, 지는 팀에게 뭐할까? "

우리에게 물어보길래 아는 단어를 얼른 댔다.


지는 팀에게는 punishment를 주고 이기는 팀에게는...


그러자 강사 눈이 커지면서 그 단어를 여러번 되내이더니 아주 하등한 인간대하듯 냉소를 보였다.


punishment는 처벌, 형벌, 벌이란 다소 하드한 단어인데 우리생각으로는 간단히 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만 단어가 의미하는 문화적 차이가 컸었나보다. 


미국은 체벌이 없나?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학교는 모르겠지만 검색을 해보니 물리적방법을 통한 훈육의 특권이 주어진다고한다. 

 



내가 학교다닐 때 선생님들은 늘 "사랑의 회초리"를 들고 다니셨는데 그걸 쓴 날도 있고 안 쓴날도 있다.

어떤 날은 숙제를 안해도 통과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학생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매를 드시기도 했다.

주로 손바닥이었는데 겁이 많은 친구들이 손을 확! 뺴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맞으면 되는데 그 행위는 또래들이 보아도 얄미웠다. 선생님은 오죽 했을까?

한 대 맞을 게 두 대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원격인가 원자폭탄이란 체벌도 있었다.

의자를 치우고 손은 나란히, 다리는 구부리고 몇 분이면 끝날 체벌이지만 꼭 중간에 넘어지거나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으면 시간이 연장되었다. 


가장 기억에 나는 체벌은 초등학교 때 남자선생님이 우리반 여학생을 발로 쳤던거다.

갑자기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그 아이가 앞으로 나가서 엎드려 뻗쳐를 했는데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어린 눈에 보기에도 선생님이 개인 감정을 싣고있구나란 생각이 드는 체벌이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선생님들은 늘 막대기를 들고 다니시며 칠판의 글씨를 가리키는 용도였다가 조는 아이들이 있으면 교탁을 탁!치는 용도였다가 공부를 안하는 친구들의 엉덩이를 먼지안나게 때리는 도구로 변하기도 했다. 

영화 친구에서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라며 먼지나게 때렸던 그 장면, 그리 낯선게 아니다.

물론 아버지 뭐하시냐라고 묻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몇 주년을 맞이해서 은사회를 했었는데 그 선생님들이 인사와 한 말씀을 하시는데 1반부터 10반까지 똑같은 멘트를 하셔서 놀랐었다. 

" 내가 여러분 잘 되라고 때린 것, 정말 미안하고 사과합니다."

딱 한 분만 체벌에 대한 생각을 달리 표현하셨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는데 난 달라요.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한 것이기때문에 저는 후회안합니다."


모두들 웃었다. 

우리는 성인이니깐 

학교에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엄마의 매에 익숙한 세대였으니깐

그리고 우리도 자녀를 키우면서 가끔은 매를 들었으니 그 정도의 체벌로 몇 십년째 앙심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몽둥이로 손바닥을 맞은 사람은 순간의 부끄러움과 아픔 두 가지를 느낀다.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는데말야 잘못했으니 맞을 짓을 했으니 맞는다만서도 지켜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망신스럽다.

선생님이 손목의 힘으로 임펙트있게 때린다. 어떤 선생님은 너무 많이 때려서 손목이 아프다고하셨는데

스냅을 썼어야 했다. 어쨋든 내리치는 막대기가 스치는 강도는 손바닥 어디를 맞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쩌다가 손가락을 정통으로 맞으면 선생님도 미안해하셨다.

두둑한 부위를 맞으면 덜 아프다. 

열 개의 손가락은 되도록 붙히되 구부린 상태에서 맞으면 다칠 수도 있다. 그러니 선생님들은

" 손 쫙 펴, 쫙 펴라" 를 수시로 말씀하셨다. 

어떻게 하면 안맞을까를 생각키보다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맞을까를 연구했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조근조근 말로 타이를 것이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있다.

나는 등짝을 때렸는데 아이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 금세 후회가 밀려온다.

큰 아이가 10대를 맞았다면 작은 아이는 한 대도 때리거나 맞지않았다.

눈치가 빠른 둘 쨰는 오빠가 혼나는 걸 보고 얼른 모범생이 되기 일쑤였으니 그렇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때렸지!!!! 폭력엄마야~" 라고 엄마의 과한 행동(?)을 비웃는 아들이지만

본인이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체벌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 선생님들이 좀 무섭게 해야 돼. 말안들으면 때리기도 하고 그래야지."

그러면서 학교 샘들에게 맞았던 얘기를 한다.


자녀들이 혼났다는 여러 체벌과 내가 받았던 체벌은 베틀로 이어진다.

"너, 이런 자세 해봤어? 원격인가 원자폭탄인가 이런거야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
" 엄마, 토끼뜀이 최고야. 다음 날 진짜 아프다니깐"
" 너, 혹시 매 피한 적 있어?"

" 그럼 더 맞지"


은사회에서 선생님들이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지만 당시에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요즘으로 따지면 두 반이 합친 것보다 많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말라는 건 많고 하고 싶은 건 더 많은 때가 아닌가

비교적 말을 잘 듣고 공동체란 느낌의 세대라 자기 반의 누군가가 대표로 혼나면 모두들 바짝 긴장해서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들었다만 혼날 일은 늘 있었다. 




우리는 매를 맞고 진짜 잘되었을까? 

매앞에 장사없고 3일 굶어 도둑질안하는 이 없다란 말이 있다. 

아주 많이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를 정신차리게 매질 한 번은 있었으리라.


오죽했으니 매를 들으셨겠지싶기도 하고 그 때 매없이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나란 생각이다보니

선생님들이 오랜 시간동안 길티(guity),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아이러니다. 

30년 넘게 교육자로써 미안한 것이 "때렸다"라는 게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더 열심히 가르쳤어야했는데...아니면 더 많이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등등보다

훈육의 방법이 미안했다라는게 어찌보면 때렸던 행위는 지위, 상대와 무관하게 하지말아야 할 

행동이기에 그런 길티를 가지는 게 아닐까. 

오래 전 그 때는 다 그랬지의 선생님들뿐 아니라 나역시 

감정과 훈육의 정당성을 교묘하게 섞지않았나싶다. 


연일 아이들학대폭행, 운동선수 폭행, 연예인 폭행이 릴레이처럼 계속 이어진다.

가끔은 무고한 경우도 있고 더러는 왜 저렇게까지했을까 무식한 경우도 있다.


때리는 자들이 말하는 패턴이 있다.

" 맞을 줄 알아. 내가 너, 00 안하면 맞는다고 했지"

때린다고는 말하지않는다.

" 오늘 너, 내가 때려서 훈육할거야" 란 말보다는

" 너가 말을 듣지않았기때문에 오늘 좀 맞아야겠다." 란 식으로 표현하는데 어찌보면 

가해행위를 순화시키는 거다.


"난, 때린다고 안했어. 때리고 싶지않아. 니가 안했으니깐 맞는거야."


내 자식이니깐, 내 후배니깐, 내 아래니깐, 내 학생들이니까란 수직개념,

이제는 바뀔 때가 지났다.  


우리가 인생에 필요한 모든 지침은 사실 유치원때 다 배운 항목이다. 


"남의 몸에 손대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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