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물어가는 글쓰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오래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곰삭은 묵은지다.
최근에 영화[설굴열차]와 [옥자] [기생충]를 다시 봤다. 그중 '옥자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2010년 운전하고 가다가 큰 동물이 앞에 있는 착각을 했다고 했다. 평소 얼마나 많은 생각을 담고 영화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때부터 예비작가와 만나 기획을 하고, 8년 만인 2017년 6월 29일 옥자를 개봉했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의 거장으로 거듭나는 그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고, 1994년 영화[백색인]로 데뷔를 했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세계를 향한 봉준호 감독의 성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 성공을 위해 묵묵히 삭히어 온 그 시간들은 세상을 향해 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묻어온 시간만큼 영글은 결실을 들여다보면서, 막 시작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시작하는 글쓰기
엊그제 요산문학관에서 책 2권을 받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지난해 추리문학관에서 함께 글쓰기 수강을 했던 지인이 연락을 했다. 아무런 정보도 확인하지 않고 동참하기로 했다. 2023년 한국문학관협회 특성화프로그램 지원사업 '세계를 상상하는 소설 쓰기'에 참여를 해서 3개월 간 12회 수강을 했다. 6월에 시작된 글쓰기를 하면서 마칠 때까지 오늘 그만둘까, 담주에는 오지 말까 하면서 떠밀리듯 숙제하는 글쓰기를 마치고 두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책을 받았다.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나는 창작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소설은 꿈도 꾸지말자 하면서도 글을 놓지 않는다. 어제도 부산도서관에 '시민작가' 청강을 하고 왔다. 이제 시작이라 문학관을 드나들며 동냥하듯 글을 쌓는다.
처음에는 마을 여행을 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기록하는 글쓰기를 했다. 다음은 우연한 기회에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다음 글들은 문학관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수필 2편과 단편소설 2편을 실었다. 브런치와의 인연은 세바시에 나오는 강연자들의 대부분이 브런치 작가였다. 브런치가 뭐길래 성장하는 과정에 코스처럼 밟아가는 걸까 궁금해서 브런치에 가입을 하고 가볍게 가입인사하듯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도 않고 글을 발행했다. 당연히 거절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에 또 해보지 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고 세 편의 글을 발행했다. 물론 탈락했다. 그때 나는 글쓰기가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포기를 했다. 가끔 브런치를 열어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서 포기하길 잘 했다 생각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자주 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구독자 없는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쓴다. 그 일기는 하루의 동선이다. 특별한 정보를 담는 것도 아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을 하고 있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하루의 여정을 담는다. 사실 글을 쓴다고도 할 수 없다. 글쓰기에 힘을 빼고 있다가 요산문학관 단편 소설 쓰기를 하는 중에 합평을 하던 담당강사인 소설가가 "이 글은 논픽션 공모가 있을 때 넣을 수 있도록 잘 다듬어 두라"라고 했다. 잠시 우쭐!
그 후,
지난여름휴가를 진주에서 열흘을 보냈다. 친정엄마 구순을 맞아 식사도 하고 진주에서 친정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친정엄마를 보면서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심각했다. 그 많은 시간을 뭘 하면서 살아갈까, 문득 그 소설가의 말이 스쳤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브런치를 열고 다시 작가 신청을 했다. 오랫동안 저장된 글 세 편을 발행했다. 이번에도 거절이면 진짜 글쓰기는 포기다 하는 다짐을 했다.
드디어 나도 브런치 작가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루가 지나자 메일이 왔다. 눈을 의심했다. 다시 보고, 또 보고 , 내가 브런치 작가라니. 흥분한 나머지 카톡에 '자랑질'을 했다. 머지않아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날 이후 수시로 브런치를 열었다. 라이킷, 구독자, 관심작가의 단어를 번갈아 검색을 하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글은 글이 아니구나, 자랑은커녕 다 지우고 싶었지만 이미 문자로 기록이 된 사실을. 겸손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간절한 순간은 없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삭힌 시간만큼 오랜 시간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기를 하면서 야물어가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하다못해, 내 인생에 책 한 권이 되더라도 오랜 시간 야물어가는 글쓰기를 하면서 묵은지 맛을 내고, 곰삭힌 색과 향으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는 글쓰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