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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보고서

엄마, 내가 멈춰 있는 것 같아

by 그냥 써 봄

엄마, 내가 멈춰 있는 것 같아.


추석을 앞두고

- 엄마, 이번 추석 때 부산 못 가요. 여행 가요.

“그래,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지” 쌍수를 들었다.

결혼 12년 차, 6학년 외딸을 둔 맞벌이 학부형인 큰딸의 두 마디!

엄마, 내가 멈춰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냥 살아요.


이제 말할 수 있다

내 나이 40대는 그랬다. 묶여 있는 상황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그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큰딸이 재작년 여름 친정나들이를 왔을 때

- 요즘 어떻게 지내니?

- 엄마, 내가 멈춰 있는 것 같아.

- 그렇지. 지금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잖아.

- 그래서 그냥 살아요.


그날 이후 그 말은 나를 멍하게 했다. 문득문득 그 말에 걸려 넘어져 가슴이 미어졌다.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일과 육아, 가사를 도맡아 했던 내가. 지금 되돌아보니 그 나이에는 전쟁을 치르듯 한 순간을 안 놓치려고 안간힘을 다 했지만, 열악한 환경에 열정만 그득해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안절부절했다. 뭔가 해야 하는데 앞 뒤를 둘러봐도 틈은 보이지 않고, 머물러 있자니 남들보다 뒤처진 느낌으로 늘 마음을 지옥으로 끌고 갔던 것 같다.


육아와 가사, 일을 병행하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총총거려도 늘 그 자리. 열정이 앞서 오만가지 갈등은 나락까지 떨어뜨리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지만, 꼼짝달싹 못하고 붙박이로 살아가는 현실이 얼마나 답답하고 우울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외동딸을 둔 맞벌이 학부형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애쓰지 마라.


40대, 불타는 열정을 추스르고 주어진 그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갈등 없이 애쓰지 말고, 그 순간에 충실하고 감사해라. 금쪽같은 그 시간은 네 딸에게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채워질 테니. 그 소중함을 잊지 마라. 지금 당장 얼마나 절실한지 가늠해 보고 시도든 도전이든 해라. 무모한 열정은 현실을 혼란스럽고 우울하게 하더구나. 지금 할 수 없거나,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면 오늘은 그냥 머물러도 좋다. 그 시간 또한 그만큼 성장해 갈 테니.


지금 생각하면, 왜 그 당시 그렇게 불안했는지,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차라리 그날을 내버려 두었어도 괜찮았는데, 오히려 이럴까 저럴까 뭘 해볼까 갈등만 하지 않았어도 주어진 그날을 알차게 보냈을 텐데.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버겁게 꾸역꾸역 왔더라.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왔는지 이제야 내가 보이더구나. 늘 다른 사람으로 인해 피해 본 듯, 끙끙거리는 동안 내 인생은 그야말로 찌그러져 있더라.

물론 40대는 생애 가장 활발한 시기다.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 왕성한 시기이기도 하고 능률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황금기가 아닐까 싶다만, 일과 삶(육아, 경제, 가족테두리)을 동시다발적으로 지치지 않고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원하는 시기인데, 발목을 붙잡는 걸림돌이 많은 시기와 맞물려 있더라. 그때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당시는 정답이 하나였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 지금은 인생에 정답이 없더구나. 애쓰고 산다고 인생이 특별해지는 게 아니더라. 우리네 인생이 거기서 거긴데, 왜 그토록 아등바등 전쟁 치르듯 좋은 나이를 속절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갈피를 못 잡았던지.


헛헛한 날은 떠나라.


떠나라. 언제든 버거울 때 떠나라. 그렇다고 늘 반복해 오던 일상에 구멍이 나는 것이 아니더라. 일상을 떠나 마음을 비우면 여행에서 또 다른 뭔가가 채워지기 마련이다. 떠나는 마음보다 돌아오는 마음은 뭔가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할 수 있겠다 싶더구나. 마을 여행을 통해 내 삶이 풍요로운 지금 감히 말할 수 있다. 여행은 삶을 말랑말랑하게 나를 다독이더라.


마음이 웅크리고 있을 때 떠나라. 앙금을 쌓지 말고 떠나서 비우고 다시 채워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여행에서 찾아라. 그리 멀지 않은 곳,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에서 헝클어진 내 마음을 오롯이 빼앗겨 나를 곶추 세우고 힘을 얻고 돌아오게 되더라. 어쩌면 그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테지만, 한심하고 무료한 시간들이 또 다른 길을 안내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딱 좋은 나이


살아오는 동안 늘 미안했다. 40대에 열정을 짓누르고 너희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겠다는 미안함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너희들은 아이들과 함께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갈등 없이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요즘은 그렇더라. 오늘, 지금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더라. 마냥 쉬어가도 좋고, 친구를 만나서 촉촉한 수다하는 날은 더 좋고, 문화강좌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들어오는 날은 더욱 좋더라. 그러면서도 내일, 미래의 시간을 촘촘히 기록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이 딱 좋은 나이로구나.

내 나이 40대는 하루를 준비하는 분주한 새벽을 열고 종일 일에 지친 심신을 쉴 틈 없이 긴장 속에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대중이 없이 대부분은 자정을 넘겨서야 한 시름 놓았다. 매일이 허송세월을 보낸 듯 헛헛했던 날들은 내 안에 나를 위한 무모한 열정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열정은 불가항력의 나였는데도 말이다. ‘피 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그런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


40대 언저리에 있는 딸들아, 애쓰지 말고 주어진 오늘에 감사한 마음이면 그 나이가 딱 좋은 나이다. 지금이 딱 좋은 나이는 그날그날이지 싶다.


12년 만에 네 딸과 함께 떠난 먼 여행에서 40대의 나이를 즐기고 오렴.

지금 그 순간이 딱 좋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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