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밥상에 봄이 차오르다
땅의 숨결이 차오르는 시간이다. 봄은 언제나 미각으로 다가온다. 얼어붙었던 대지가 풀리기 시작하면 화려한 꽃망울이 터지기 전 푸성귀들이 먼저 고개를 내민다. 그 푸성귀들은 계절의 문턱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나물이다. 봄의 시작은 혀끝에서 깨어난다.
봄이 오면 대지의 리듬에 따라 식탁의 풍경도 자연스레 달라진다. 며칠 전, 이웃이 건네준 머위를 다듬으며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거친 손끝에서 주물러지던 보드라운 머위나물의 질감과 향기. 그 시절의 봄은 늘 나물로 시작되었다.
내가 만든 머위나물은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어머니의 손맛과는 결이 달랐다.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는 추억의 맛으로 남았다. 당시는 그 맛을 몰랐다. 어른이 되면서 나물의 맛을 알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봄은 들녘에서 나물을 캐던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시작되었다.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몸을 땅 가까이 낮추고 봄나물을 캐곤 했다.
소박한 밥상 위에 올랐던 달래와 냉이, 머위는 봄의 계절 대표음식이자 삶의 온기였다. 나물은 낮은 자리에서 자란다. 꽃처럼 시선을 사로잡지도, 화려함으로 존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놀라울 만큼 질기고 단단하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누군가의 발길에 짓눌린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힘. 끈질긴 생의 의지가 한 접시의 나물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한 젓가락의 나물무침에는 겨울을 견뎌낸 시간과 봄을 밀어 올린 대지의 기운이 함께 스며 있다. 쌉쌀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향은 겨우내 잠들어 있던 감각을 조용히 일깨운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지만, 나물은 그저 묵묵히 자라고 때가 되면 식탁 위에 오른다. 나물이 식탁에 오르는 순간, 깨닫는다. 삶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의 결을 따라 길어 올린 소소한 기쁨이라는 것을. 봄은 멀리 있지 않다. 한 접시의 나물, 그 소박한 맛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