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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중년의 일상 Aug 30. 2023

송정 옛길에서

산딸기의 추억과 아버지의 먹먹한 그리움을 걸었다

 산딸기의 추억


마을 여행하는 날, 송정 옛길을 걸었다. 송정 옛길은 도시의 빠른 속도를 빗겨 나 입구 양쪽에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로 푹신한 카펫처럼 야자매트를 푹신하게 깔아 두었다. 중간에 보호막을 치듯 위험한 위치에 안전장치를 하고 미끄럼 방지를 위해 오솔길을 정비해 두었다. 추억 속의 시골 소녀는 신중년이 되어 또래들과 추억을 걷고 깔깔 거리며 오늘을 경험하고 또 희미해질 추억을 쌓아간다, 송정 옛길에서. 


송정 옛길을 걷다가 추억 속의 고갯길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 12년 동안 10리 길을 걸어 다녔다. 초등학교 오후반이었을 때 우리는 무덤이 놀이터였다. 눈 내리는 날이면 무덤 가장자리에 빨간 골덴바지의 물이 배어 하얀 눈에 빨강이 물들었다. 손발이 꽁꽁 얼어 호호 불면서 무덤 봉분을 차례대로 미끄럼을 타고 놀다가 등교 시간을 놓치고 지각을 해서 벌을 섰던 기억이 있다. 오전 반일 때는 집으로 오는 길에 무덤 앞에 놓인 상석을 책상 삼아 숙제를 했다. 추운 겨울날 등굣길에 5원씩 보태서 문산역 앞에까지 걸어가서 강엿(고구마엿)을 사서 말랑한 엿을 수업하는 동안 굳혔다가 하굣길에 돌멩이로 깨어서 나눌 때 작은 한 조각에 영혼을 쏟았던 기억은 지금도 엷은 미소가 번진다.


송정 옛길을 걷다 보면 산딸기가 삐죽거리다 말고 잎사귀에 묻혀있다. 내 어린 시절 고갯길에서 따 먹었던 빨간 산딸기는 유난히 알이 굵고 검붉은 맛있는 딸기였다. 그 맛은 추억의 맛이자 소중한 내 고향의 맛이다. 우리는 큰 고개 1개와 작은 고개 2개를 넘어 등 하교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딸기와 핏기를 따 먹고 버들피리를 불며 누가 더 큰 소리가 나는지 온 힘을 다해 얼굴에 홍조를 띠고 숨이 찰 때까지 불어댔다.

     

송정 옛길은 가파르지 않아 적당한 호흡을 하면서 느리게 걸어서 오솔길 중턱 쉼터에서 후~ 하고 숨을 내뱉는다. 그간의 쌓인 날들과 함께. 그리고 다시 걷는다. 곡선으로 접어들 무렵 송정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와! 송정 바다다! 익숙한 송정 바다를 송정 옛길에서 마주한다. 송정 바다는 또 다른 감정의 색깔을 입고 있다. 송정 바다는 송정역사를 품고 있다. 지금의 송정역사는 해변열차 정거장이다. 해변열차는 송정 바다, 구덕포, 청사포, 미포를 연이어 달린다. 속도를 낮추고 바다의 물빛을, 파도와 바람과 나무들의 속삭임을 안고 달린다. 때로는 해변열차 선로 너머의 산책로를 따라 파도와 바람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걷는다.  처 ~얼~ 썩! 처~얼~썩! 

     

 먹먹한 아버지의 그리움


송정 바다는 나에게 특별하다. 송정역사가 있어 남 다르다. 흐릿한 기억 속에 어린 시절 역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먹먹한 그리움이 송정역사에서 서성거리게 한다. 오래전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송정 해수욕장 앞에 즐비한 길 커피를 손에 들고 비 젖은 레일을 걸었다. 아버지의 그리움을 걸었던 것이다. 송정역사는 아버지의 그리움과 내 삶의 위로 같은 장소다. 지금도 송정역사는 내 안에 먹먹한 그리움으로 머물고 있다.

구 해운대 송정역사(지금은 해변열차 정거장)

송정 옛길을 걸어서 내려오면 수없이 달렸던 달맞이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구덕포로 향한다, 송정을 맛보는 시간, 광어골 흑송으로 간다. 그곳에서 푸짐하게 초밥을 먹고 지금은 사라진 인얼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며 긴 수다가 이어지고 송정옛길을 말한다. 가끔 산골이 고향인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녀의 추억 또한 비슷한 기억을 하고 있어 반가울 때가 있다.

     

2년 동안 송정에 살았다.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20여 년을 살면서도 놀이터는 송정 바다였다. 송정 인얼스에서 커피와 블루베리 식빵과 찰깨단팥빵을 티푸드로 넘치게 먹고 마셨다. 지금은 추억의 송정이 되어 송정 옛길을 걷고 송정에서 해변열차를 타고, 해안로를 따라 산책을 한다. 송정 옛길은 추억의 길이자 아버지의 먹먹한 그리움이다. 송정 옛길에서 어린 시절 나를 만난다. 그 천진난만했던 산골소녀를.    


송정역은 새롭게 변했지만, 내 안에 먹먹한 아버지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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