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기록하는 시간

집 나서면 여행이다

by 신중년의 일상


여행이 별 건가?

나는 여행의 설렘 뒤에 가려진 고단함이 있었다.


연일 비행기 유류할증료가 인상된다는 뉴스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는데,

그 뉴스를 보면서 갑자기 코로나 시기에 떠났던 마을 여행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해외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렘이 좋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캐리어에 가득 담았다 줄였다를 반복하고

떠나는 시간까지는 붕 떠 있는 그 설렘이 말이다.


막상 떠나보면 고단한 일정이 기대 이하일 때가 많다.

돌아와서 여행 후기에 남길 만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예쁜 풍경을 보거나 오래된 건축물, 대표 관광지만 보고 다녔으니 별 의미가 없었다.

단지 '나 여행 갔다 왔다. 어디 다녀왔다'가 전부가 되는 여행이었다.


내가 하는 여행인데 가이드의 타임라인에 따라 의식 없이 일정에 끌려다니느라 바쁘기만 했다.

사전 준비 없이 여행사만 믿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몸은 피곤하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여행은 먼 여행이 아니라 집만 나서면 여행이 되는 마을 여행이었다.

나는 코로나 시기에 해외여행이 불가한 시간 동안 여행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마을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이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만 나서면 여행인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준비 과정부터 선물까지 고민하는 복잡한 여행보다는

운동화만 신고, 가벼운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집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진 풍광은 해외여행 못지않은 일상 여행이 된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여행, 특별히 마음먹고 계획할 필요 없이 집만 나서면 여행이 된다.

마을마다 도시재생이다, 마을 가꾸기다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골목골목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과 바다로, 도심 속 빌딩 숲으로 문화의 골목을 찾아 도시와 역사, 관광을 한꺼번에 여행하게 된다.

때로는 시골 풍경과 사람을 마주하고 마을을 걷고, 마을을 읽는다. 돌아와 마을을 기록한다.

이 모두는 내 삶의 영역으로 들어와 내 삶의 시간 여행이자 역사의 기록이 되어간다.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장소, 오래된 재래시장의 잔치국수, 존폐 위기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의 담벼락,

어쩌다 마주친 일제강점기의 아픈 흔적들까지. 어두운 역사의 흔적은 마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마을 여행은 내 삶의 시간여행이자 역사의 기록이 된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우리집 근처 오시리아 산책길을 걸으며 내가 사는 동네마저도 모르는 문화와 역사가 많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때 걸었던 기장 8경 중 하나인 '시랑대'는 지금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다.

시랑대의 유래는 1733년 기장 현감 권적이 이곳에 와서 자기의 벼슬을 시랑이라고 하여 시를 짓고 글자를 바위에 새긴 후에 시랑대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터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두었던 그 기록은

이제 마을 여행의 역사가 되었다.


아침 산책에서 밤마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여행을 떠난다.

특별한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세상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내 삶의 역사를 기록하는 마을 여행이 된다.


길을 걷다가 나무 한 그루와 돌멩이 하나에서 역사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핸드폰 하나 달랑 들고 시랑대를 찾아갔던 그때처럼, 여행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굳이 해외 여행을 떠나야 여행인가. 집만 나서면 여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