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오히려 도전을 즐기는 쪽에 가깝다.
특히 음식에 대해서라면 더욱 예외 없다.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드는 때도 있지만, 가끔 영 아니다 싶은 놈들도 존재한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좋아진 것들이 더 많다.
그래서 싫어하는 음식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식사 자리를 갖는 사람들이 메뉴를 물어오면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다 좋아요. 그냥 하는 말 아니고, 정말 다 좋습니다.”
나와 달리 우리 엄마는 입맛이 까탈스럽다. 고기 비계는 물컹해서 싫다. 날생선도 별로다. 치킨을 시켜놓고 튀김옷만 따로 벗겨 먹기도 한다. 야채는 두루 좋아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탓에 나는 어린 시절 식습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다. 내게만 골고루 먹을 것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편식쟁이가 돌연변이를 낳아 기른 셈이다.
편식에 대한 재밌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존재한다. 내 친구 수현이 그렇다. 그녀에게 편식은 이성적인 호감을 방해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이 것도 싫다. 저 것도 싫다.” 하면서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고 한다. 내가 남자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녀에게 사랑받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키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건 아니다. 내게도 도무지 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홍어’였다. '회에 오줌을 뿌려 먹는 맛'이라는 끔찍한 표현도 들어봤다. 홍어가 주는 상징적인 위협감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홍어'를 먹어야 할까?
홍어 영재의 탄생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 철저히 외면했던 홍어와 마주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회사 근처의 작은 식당. 그곳에선 조금은 특별한 삼합을 팔았다. 보통은 삼합이라고 하면 수육과 묵은지를 곁들인 홍어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여기는 달랐다. 고기를 삶지 않고, 구웠다.
여느 고깃집에서처럼 삼겹살을 돌판에 굽고 있으면 홍어 한 접시가 나온다. 묵은지는 그냥 먹어도 좋고, 같이 구워도 좋다. 고소한 기름 맛과 묵은지의 새콤함이 홍어 특유의 냄새를 가려준다. 기분 좋은 오독한 식감만 남았다.
한 번의 망설임이 다섯 번의 젓가락질로 이어지면, 홍어를 받아들일 준비는 끝난 셈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생각보다 별 거 아닌 경우도 많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 경우가 그랬다. 첫 시도만에 성공한 나에게 주변 홍어마니아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얼떨결에 나는 홍어 영재가 됐다. 서른에도 잠재력은 발굴될 수 있다.
냄새와의 전쟁
단 한 번 성취가 생기면, 그다음 시도는 훨씬 쉬워지는 법이다.
나의 본격적인 재능 계발은 사당의 '흑산도홍탁'에서 시작됐다. 이 가게는 요란한 냄새가 특징이다. 만성비염이 아니라면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찾을 수 있다. 사당 인근 거리를 배회하다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처음 여기를 소개한 건 회사 동기 명한이다. 그는 전남출신의 홍어 전문가다. 내가 홍어와의 만남을 그에게 고백한 후, 속전속결로 홍어 모임이 꾸려졌다. 그는 단골집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홍어 입문자에게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고난도 코스임이 틀림없었다. 밖에서도 냄새가 풍길 정도이니 가게 안은 얼마나 심하겠는가. 오랜 세월의 노란 벽지에는 홍어 냄새가 아주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억 소리가 나왔다.
사장님은 홍어가 나오기 전 귀한 홍어애 몇 점을 내어준다. 싱싱한 홍어애는 마치 부드러운 크림 같다. 안도하는 것도 잠시. 푹 삭힌 붉은빛의 홍어 접시가 나오면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왠지 이때만큼은 홍어의 한자 표기로 넓을 홍(洪)이 아닌, 붉을 ‘홍(紅)’이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도 없이 가장 빨간 것을 골라 씹다가 막걸리를 들이켰다. 순간 코가 뚫리며 제대로 직격타를 맞았다. 나 진짜 홍어를 먹고 있구나.
막상 먹을 때는 몰랐던 문제가 다음날부터 발생했다. 며칠간 온갖 곳에서 홍어 냄새가 나는 이상한 착각이 든다. 옷과 머리카락, 심지어 손톱 밑까지 밴 듯하다.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괜히 한번 더 양치하고, 옷에 탈취제도 뿌렸다.
이토록 지독한 후유증을 감내하며 홍어 모임은 계속된다. 이제 우리는 만나면 강박적으로 서로의 냄새를 확인했다.
미지의 문 앞에서
그간 나만의 홍어 취향도 생겼다. 지금은 고춧가루 섞인 굵은소금에만 살짝 찍어 먹는 게 가장 좋다. 처음에 의존했던 묵은지도, 고기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 홍어 본연의 향과 식감에 집중하는 쪽을 선호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배운 건 단순 새로운 음식만은 아닐 것이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을 터득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도 맺었다. 은근히 털털함을 어필할 수 있는 장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문 하나를 열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내겐 이미 활짝 열린 문도 있고, 반쯤 열렸다 닫힌 문도, 아직 손도 못 댄 문도 있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말해주는 건, 그 문들 너머 펼쳐진 세계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최근 열린 문 앞에서는 냄새가 조금 날 수도 있겠다.
1. 최초의 삼겹살을 곁들인 홍어 삼합
2. 위협적인 붉은색의 홍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