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번화가에는 비슷비슷한 구두 전문점이 즐비했다. 주로 저가의 양산형 디자인을 취급했다.
양쪽 흰 벽면은 사이즈별로 나뉜 구두 진열대로 꽉 찼다. 235 표시가 붙은 칸 앞으로 다가간다. 나는 조용히 눈알만 굴리다, 뱀피 패턴의 녹색 하이힐을 집었다.
자아가 막 형성되는 무렵. 엄마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로지 내 취향만으로 고른 첫 신발이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참 더럽게 못생기고 불편한 신발이다. 그리고 웃기게도 난 그걸 좋아했다.
친구들과의 주말 약속이 잡히면 어김없이 나는 그 하이힐을 신고 나갔다. 그럼 항상 내 두 발은 상처투성였다. 한가득 잡힌 물집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였다. 자꾸 닿는 발목 뒷부분은 까져서 피가 났다. 쓰라린 발목을 뒤틀어 가며 절뚝, 절뚝 몇 시간이고 쏘다녔다.
그렇게 나는 무지외반증을 얻었다.
내 발은 급커브 중
무지외반증으로 엄지발가락이 자꾸 안쪽으로 심하게 휘었다. 반작용으로 뼈는 바깥으로 튀어나왔고, 자연스럽게 발볼도 넓어졌다. 발볼이 넓으면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우선 신발 디자인에 제한이 생긴다. 발볼이 좁은 신발을 보면 '나는 못 신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가끔 너무 맘에 들어서 질러버리면, 결국 발에 오는 피로감이 상당했다. 한 치수 크게 사면 또 그건 그거대로 어색했다.
하이힐은 특히 난감했다.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일수록 날렵한 앞코와 높은 굽을 달고 있다. 그건 누가 봐도 발볼 넓은 사람에겐 설계되지 않은 세계였다.
이제 1년에 한두 번 있을 중요한 일정을 제외하곤, 하이힐을 피해 다니기 바쁘다.
내가 운동화의 해방감에 빠져든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발볼을 압박하지 않는다. 구두와 달리 내 발의 모양을 탓하지 않았다. 운동화는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편안함도 취향이 될 수 있다.
신발장 앞에서의 고백
본가 신발장에는 어린 시절 사놓은 하이힐이 한가득이다. 엄마는 그걸 볼 때마다 내게 채근한다.
"너, 이거 다 언제 가져갈 거야."
나는 하릴없이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고백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운동화가 좋아. 꽉 끼고, 높고, 불편한 신발은 질색이야. 내 신발장에 그 많은 하이힐을 넣을 공간은 없어. 이미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들로 꽉 차있거든."
물론 내 고백을 들은 엄마는 그럼 돈 아깝게 왜 그렇게 샀냐고 나무랄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애써 외면하거나,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린 척하거나, 몰래 버리는 일 정도였다. 취향이 바뀐다는 건 때로는 좀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두 발은 조금 더 나다운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 발에 맞는 편안함을 사수하기 위해서, 이 정도 거짓말은 수고스럽지도 않았다.
운동화, 만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화는 오니츠카타이거의 멕시코 66 라인이다. 가볍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마치 양말 같다.
당연히 예쁜 것도 포기할 수 없다. 가죽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발에 보기 좋게 감긴다. 나같이 넓은 발볼도 제법 얄쌍하게 보인다. 특유의 문양은 스웨이드로 마감돼 있어 포인트가 된다.
게다가 캐주얼에도, 비즈니스룩에도 모두 잘 어울린다. 회사에서도 제법 단정하고 깔끔하게 신을 수 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걸어 다닐 일이 많을 테니, 당연히 또 손이 가기 마련이다.
중강도 운동에는 나이키가 제격이다. 화려한 디자인으로는 아식스도 좋아한다.
매일같이 이름만 다른 운동화가 내 외출에 동행한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힘차게 응원하고 있었다.
잔뜩 휜 내 발이 하루의 피로에서 조금 덜 지치길. 좋은 신발이 좋은 길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디 나를 자유로운 길로 이끌길.
1. 부산 여행에서의 오니츠카 타이거
2. 운동화 세탁이 절실한 오니츠카 타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