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바다에 두고 온 것

by 서지원

언제부턴가 8월 성수기에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몸에 좋지도 않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 강제로 맞다 보면 여름 더위가 시큰둥하다. 그러다 퇴근 후 건물 밖을 나서면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덮쳐오니 덜컥 겁먹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디 좋은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도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저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그 순간 더위를 피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은 고려대상이다. 바야흐로 초고물가 시대. 여름 대목 잡기에 신이 난 숙박업소들이 평소 숙박비의 두 배 넘게 받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방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역시 이럴 때는 대한민국에서 나만 빼고 다들 부잔가 싶다.




과거의 여름바다

여름 성수기 바다에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나 떠올려 보니 무려 초등학생 시절이다. 가족 여럿이 모인 해변은 매미 소리만큼 소란스럽고 활기 넘쳤다.


실컷 물놀이를 즐긴 뒤, 파라솔 그늘 아래 앉아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린다. 그때 먼발치에서 아빠가 커다란 2인용 카약을 끌고 다가왔다. 얼이 빠져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향해 아빠는 짓궂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단 둘만 탑승한 배의 선장은 아빠다. 선장의 구호에 맞춰 계속 노젓다보면 해변가 피서객들의 소음은 한순간 자취를 감췄다. 무서울 만큼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 우리 배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겁에 잔뜩 질린 나는 울먹였다.


"아빠, 돌아가자!“


바다 앞에서 나는 모래사장의 한 알 모래보다도 작고 무력한 존재였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다르지 않았다. 이 세계는 언제나 내가 닿기엔 끝없이 크고 아득했다. 그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정체 모를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대신 노를 저어 주지도 않고, 두려움을 핑계 삼아 돌아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파도에 밀리듯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현재의 여름바다

신기하게도 이번 여름에는 문득 해수욕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성수기를 피해 초가을쯤 돼서야 여유가 생겨서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제대로 된 여름 바다를 즐기지 못했다. 아주 오랜만에 즐기는 해수욕 생각에 내심 들떴다.


나는 가까운 강릉으로 떠났다. 분명 비소식이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날씨가 맑고 쾌청했다. 일기 예보만 믿고 일정을 취소했으면 크게 후회했을 뻔했다.


거리낄 것 없는 눈부신 태양 아래 잔뜩 달궈진 모래사장을 밟는다. 뜨거운 발을 동동거리며 구명조끼 하나 빌려서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


아차 하면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다. 중년 아주머니는 힘드셨는지 너무 깊다며 소릴 꽥 지르기도 했다.


나는 몸에 힘을 모조리 빼고 대자로 물에 몸을 띄운다. 눈앞에 말도 안 되게 광활한 하늘이 펼쳐졌고, 순간 어렸을 때 아빠와 카약 탔던 추억이 떠오른다. 같은 상황에서도 머리 굵어지고 느낀 감정은 또 달랐다.


결국 여름 바다도 인생도 내가 다스릴 수 없는 것들이다. 다만 그 앞에서 예전처럼 겁먹기보다, 몸을 맡길 수 있게 된 게 달라진 점이었다.


그간 쌓인 불안은 집채 만한 파도에 실어 가볍게 넘긴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낀 채 자유를 만끽하는 나였다.


1. 강릉 송정 해수욕장


2. 예약에 성공해서 잘 먹은 막회


3. 밤에 들른 분위기 좋은 서점 겸 bar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도시의 식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