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수치심을 쉽게 느끼는 영역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일이 내겐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친구 A는 온몸이 벌벌 떨리는 끔찍한 경험을 할 테고, 또 다른 친구 B는 신이 나서 애창곡까지 불러 젖힐 것이 눈에 선하다.
날씬하지 않은 몸이나 좋지 않은 피부처럼 신체적 것일 수도 있고,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일 같은 윤리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학벌・직업・경제력과 같은 사회적 요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관계적 경험도 그 대상이 된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그것을 오히려 무기로 삼아 즐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요즘 sns를 보면 길티플레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자처하거나, 본인의 수치스러운 면을 당당히 드러내고 극복하는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수치심은 인간에게 주요 관심사가 아닐 수 없겠다.
나를 가장 부끄럽게 하는 순간
고백하자면, 내가 수치심을 느끼는 건 '멋지지 않은 말'이다. 구태여 자세히 설명하자면 '멋지지 않은 말이 내 입이나 손을 통해 표출되어서 남들이 인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겠다.
솔직히 나 스스로를 멋에 집착하는 폼생폼사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를 허울만 신경 쓰는 속물이라고 비웃어도 상관없다. 혹은 멋에 집착하는 것만큼 멋없는 일은 없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어느 정도의 폼을 지키며 사는 일이 나 자신에겐 꽤나 중요하다. 불현듯 나온 나의 리액션이 소위 말해 구렸을 때는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인터넷에 내가 오래전에 쓴 댓글을 우연히 봤다가 어설픈 유행어라도 쓰여 있으면 혐오감까지 느낀다. 남들은 내 사소한 말 한마디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면서도, 나 자신이 멋없다고 느끼면 내뱉고 0.1초 만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여유롭고 쿨하지 못한 태도만이 '멋지지 않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편협하고 다소 촌스러운 사고에서 비롯된 발언이라던지, 웃기려고 내뱉은 말이 누군가를 비하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을 때도 나는 스스로를 형편없다 느끼고 만다. 대개 다른 사람이 했던 멋없고 불쾌한 말을 나 역시 되풀이했을 때 찾아오는 자괴감에 가깝다.
마음을 숨기는 사람
한때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한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본 적이 있다.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하지 않았다. 사소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요즘 느끼는 감정과 생각조차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이의 말에는 적당히 수긍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피했다.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경우도 잦았다.
내가 잘 맞는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수치심을 느낄 일은 현저히 줄었지만, 예전처럼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나를 감추는 태도가 비겁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때도 더러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찝찝한 마음만 남았다. 그래도 하나의 깨달음은 얻었다. 감정과 의견을 감추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말을 고르는 사람
결국 그 스탠스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거리낌 없이 나를 드러내면서도 말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긴 고민과 여러 시도들 끝에 최근에서야 해답에 조금 가까워진 듯하다.
먼저 내가 가진 사고 체계의 큰 줄기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진보・보수, 이성・감성 등 단순할수록 좋다. 본래 가장 단순한 것이 오히려 인간 심리에 가장 크게 작용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말들을 한다. 그렇게 하면 발언에 실수가 있더라도 스스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지나친 자기 검열은 지양하기로 결심했다. 대신 내가 판단했을 때 분명 후회할 것 같은 단어, 문장, 말투를 리스트화하여 항상 기억해 둔다. 사실 불편한 기억은 유독 강렬해서, 여러 번 되뇔 필요도 없이 단 한 번 제대로 각인해 두면 잊지 않는다. 그럼 자유롭게 내 의견을 말하되 그 리스트에 있는 표현들만 피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부끄럽지 않으려는 마음과, 솔직하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