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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진단서:병든 줄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몸이 먼저 멈춰버렸습니다.

by 강호연정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그 습관은 ‘일’이었습니다.


번아웃으로 이전 직장을 떠난 지 약 10년. 지금 직장에서 일한 지 정확히 10년 하고도 1개월이 되던 날, 저는 다시 번아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충격치가 더 커지는 걸까요. 이번에는 병원까지 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순간이 잦았습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입술과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와 눈물이 아무 때나 터져 나왔습니다.


진단명은 예상대로, 스트레스성 우울증과 신경쇠약.


새로 온 팀장님의 예측 불가능한 압박은 저의 마지막 에너지를 앗아갔습니다.


사실 저는 “잘한다, 잘한다”는 말에 혼자 춤을 추며 안 하던 일까지 찾아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방전되어, 저의 유일한 목표는 퇴직뿐이었습니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께 퇴직용 진단서를 부탁드렸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왜 혼자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열심히 하나요? 병 들어서 그만두는 게 억울하지도 않아요?”

“제가 안 하면 일이 진행이 안 되는걸요.”

“그만둘 사람이 그런 걸 왜 신경 써요? 요즘 말로 ‘알바노’ 아닌가요?”


‘알바노.’

그 말 한마디에, 저는 발목을 잡고 있던 족쇄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었던 저 자신도 몰랐던 완벽주의였습니다.


“대충 하세요. 머리가 하얘지면 그냥 실수하고, 실수한 대로 두세요. 자존심 상하겠지만, 그러면 권고사직 당하고 실업수당도 받을 수 있겠죠.”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혼자 조용히 그만두면 회사만 좋겠죠. 억울하지도 않아요?”


그 말은 제게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눈이 뜨이는 듯했습니다. ‘일은 돌아가야 하지만, 나는 부서지면 안 된다.’


주위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 성격상 절대로 일을 그만두지도 못할 거고, 또 그냥 열심히 일하겠지 뭐.”


저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당하고, 부품처럼 쓰이다 폐기되는 결말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도 버티며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래요, 또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 우울증 일기는 100일 도전의 시작입니다. 100일 후, 저는 백조가 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약을 먹으며 야근을 하고 있을까요.


살아 보려고, 다시 글을 씁니다.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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