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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울한 날에도, 누군가의 손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약을 먹었음에도 이틀째 잠을 잘 못 잠. 다음 진료 시에는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를 더할 것.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며 아침을 맞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는 긴 밤이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들어서자, 팀장님은 어제에 이어 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저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알바노’를 실천하고 싶어서, 그리고 잠시라도 숨 쉬고 싶어서 저는 다시 외근을 자청했습니다. (사실 원래 해야 할 일이기도 했습니다.)


협력업체 국장님과 함께 나선 외근 길. 예상 밖의 큰비를 만났습니다.

비에 마음이 젖었는지, 깜박하는 증상이 심해졌는지, 그날은 기어이 휴대전화를 택시에 두고 내렸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휴대전화는 무음, 택시 번호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휴대전화 케이스에는 신분증과 신용카드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아… 어째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망연자실한 상태였습니다.

함께 외근을 나온 국장님께서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택시에 물건을 놓고 내렸는데요.”

“A에 전화하세요.”

“A : B에 전화하세요.”

“B : C에 전화하세요…”


그렇게 몇 바퀴쯤 돌고 나서야, 전화가 다시 처음의 A로 돌아왔을 때 드디어 제 휴대전화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노안으로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시던 국장님은 마침내 제 전화를 찾아내셨습니다.


빗속에서 바짓가랑이가 다 젖어가며 몇 번을 뛰신 끝에 그분은 휴대전화를 제 손에 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멍청하니 정신을 잃고 있던 저를 사무실로 데려가 정신도 차리게 해주셨습니다.


아플 때는 세상이 다 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우울증일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도 아직 제가 직장에, 그리고 사회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주위에 이렇게 감사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렇게 비 오고 마음이 젖은 어느 날,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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