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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꺼내기 전, 인사담당자에게 털어놓다

회사에선 완벽한 나, 병원에선 환자인 나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여전히 잠을 잘 못잠. 속 쓰림이 생김. 신경성 위염이 도진 듯. 얼굴은 울긋불긋. 스스로의 못생김에 놀람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일을 망쳐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타고난 기질 때문일까요.

오늘도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며 끝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속은 쓰리고, 정신은 아득하고, 사무실 공기는 무겁기만 했습니다.

점심시간엔 밥도 먹지 못하고 근처 공원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누가 봐도 ‘어디 아픈 사람’ 같았겠지요.


오늘도 이해할 수 없는 팀장의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분노가 치밀었다가도, ‘그래도 일이 되긴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시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지인의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이대로 그만두면 너만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 인사팀이랑 먼저 상담해 봐.”


그래서 인사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예상대로, 권고사직은 불가능했습니다.

방송에 나올 정도의 비리나 엄청난 사고라도 내야 가능한 일이라네요. 소심한 저로선 은행 강도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인사담당자는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습니다.

“일이 너무 많고, 조력자가 필요하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인다”


그의 말에서 이해와 공감이 느껴졌습니다.

그 말 하나로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 사실이 그날의 위로였습니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약해서 그런가, 성격이 이상한가.”


하지만 아닙니다.

감기에 걸린 게 죄가 아니듯, 아픈 마음도 죄가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회사에서는 저의 업무 성과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잘리는 일은 없겠지요.

대신 제시된 선택지는 이랬습니다.

1. 병가를 1~2개월 사용한다.

2. 업무 조정을 요청한다.(계약직이므로 거의 불가)

3. 무급 휴직으로 회복 시간을 갖는다.

4. 그래도 그만둔다. (단, 실업급여는 불가)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나이에 그랬다간 후회할 것 같고, 그대로 있어도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선택이란, 언제나 어렵습니다.

오늘은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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