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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난도질을 당했지만, 오늘도 일했습니다

갑질의 칼날이 스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여전히 잠을 못 자서 약을 바꿈. 낮에는 졸린데, 밤에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음.

스트레스로 심장 두근거림 심화. 몇 번이나 사무실을 뛰쳐나감. 그래도 일은 거의 다 마침.

나 자신에게 욕하고 싶음.


‘갑질’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쓰이지만, 정작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숨어 있는지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팀장은 일부러 결재를 늦추고, 사소한 단어 하나를 잡아 트집을 잡습니다.

고객이라는 이름의 민원인은 상식 밖의 요구를 하며 “그게 왜 안 되죠?”를 연발합니다.

윗사람들은 고객의 목소리가 커지면 친절을 위장한 가면으로 그들의 온갖 요구를 들어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시 당당히 더 무리한 요구를 해오지요.


그때마다 나는 작은 플랑크톤처럼 흔들립니다.

아무리 애써도 잡히지 않는 숨결 하나를 붙잡듯, 나의 하루는 그렇게 소진되어 갑니다.


사무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눈 밑은 푸르고, 입술은 말라 있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그럼에도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일을 마쳤습니다.

엑셀 파일을 닫을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도 한 줄씩 닫혀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갑질은 거대한 폭력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교묘하게 스며듭니다.


틀린 것을 우기면 받아주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옳은 사람이 되고, 불공정한 힘이 정당한 것으로 둔갑하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일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데, 그대들은 언제까지 영원히 ‘갑’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이젠 그 질문을 내 안에서 되뇌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살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도 저는 영혼의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무너지고도 일어나는 나 자신이 가끔은 안쓰럽고, 가끔은 대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갑질을 겪으셨나요.

그럼에도 오늘을 버티고 계시길.


그리고 우리는,

부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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