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닿았다는 걸, 이제야 인정합니다
오늘의 증상: 밤새 잠을 설침. 출근 준비 중 두통과 피로감.
사무실에선 심장이 두근거려 몇 번이나 숨을 고름.
그래도 일은 마침. 오늘도 나는 고장 난 채로 작동함.
어려서부터 먹는 걸 좋아했습니다.
못 먹는 게 없고, 뭘 먹어도 맛있게 먹어서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돈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요.
그런 제가 요즘엔 먹는 것도 귀찮습니다. 불면증과 함께 찾아온 변화, 우울증의 그림자였습니다.
요즘은 하루 한 끼, 그것도 인스턴트나 과일로 버티곤 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따뜻한 미역죽을 해보았습니다.
쌀과 미역을 불리고 죽 제조기에 넣었는데, “띠링~” 소리와 함께 다 됐다는 신호가 울렸습니다.
열어보니, 죽은 끓지도 않았습니다. 버튼을 다시 눌렀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아, 고장 났구나.”
죽을 냄비로 옮겨 끓이려 부었더니, 냄비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넘칠 정도의 양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불어났는지 모를 만큼이었습니다.
결국 큰 냄비와 제조기, 두 군데에서 미역죽을 끓여야 했습니다.
죽은 제대로 되었지만, 하루 종일 먹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나는 고장 난 죽 제조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갑자기 한꺼번에 무너진 게 아니었습니다. 가랑비처럼 쌓인 일들이 내 한계를 넘었고, 사람들과의 갈등, 갑질,
계약직이라는 불안이 함께 쌓이며 어느 날 불현듯 ‘작동이 멈춘 나’를 마주한 것입니다.
출근길은 점점 더 두려워졌습니다.
답답하고 무섭고, 너무 가기 싫은데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까 억지로 몸을 끌고 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이 멈추고, 가슴은 조여오고, 생각은 멍해졌습니다.
팀장은 여전히 트집을 잡고, 결재를 늦추며 나를 흔들었습니다.
결국 사무실을 벗어나 외근을 자청했지만, 잠시 숨을 돌린 고장 난 몸과 마음은 다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몸도, 정신도, 다 타버린 초처럼 녹아버린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써준다는 건 내가 멀쩡하지 않다는 증거겠지요.
인사담당자와는 이미 상담을 마쳤습니다.
이제는 결론을 내릴 때입니다.
저는 병가를 정식으로 신청하려 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예전에 하던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그래서 다들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뭐든 해내는 사람, 절대 무너지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만능이 아니고,
지금의 나는 고장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