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를 괴롭히는 우울의 원인

1장. 우울증과의 첫만남

by 나은진







내가 우울증을 앓게 된 이유는 단순히 나만의 문제였을까?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해서, 확고한 목표를 정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탓에 내게 깊은 우울감이 찾아온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청소년기에 갖고 있던 불안과 우울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흔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시절, 진로와 입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그러듯이 나 역시 미래에 무얼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명확한 꿈은 가졌지만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식으로 내 길을 찾아야 할지도 막막했고, 현실적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돈벌이가 될 본업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너무나 이상향에 젖어있었고, 글로 성공하거나 조금 배고파도 글을 쓸 수 있으면 행복할 거라는 마음으로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독서를 하며 자기만의 글을 집필해가고 있었으니, 기회만 생긴다면 나도 내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부끄럽게도, 그 시절의 나는 내 글솜씨를 높게 보고 있었다. 잘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주눅 들지언정 못 쓰는 축에 드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예창작과 입시 역시 힘든 길이 되겠지만 내 노력만으로도 성과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랬던 내가 고등학교에 와서 망가졌다. 내 예상보다 더욱 숨 막히는 학교 분위기와 친구보단 경쟁자로 느껴지는 인간관계,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한나절과 교사들이 부추기는 대입을 위한 강요들이 내겐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조금 귀찮지만 즐거웠던 공간이 한순간 감옥처럼 바뀌어버렸다.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과 맞서다 보니,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점점 지쳐만 갔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을 대충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남들 하는 대로 수업에 집중해서 필기도 하고, 과제와 수행평가는 물론이고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까지 챙겼다. 중학교 시절 내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싶어서 도서부를 포함한 동아리를 세 개나 가입했다. 같은 공통 관심사로 모인 친구들과 선배들과 함께 나갈 대회도 준비했다.



너무 열심히 살려고 마음먹은 게 문제였을까? 공부에 집중하면서 입시를 위한 글도 쓰고, 동아리 활동까지 병행하려면 확실히 24시간 몸 하나로는 부족하긴 했다. 정해진 에너지에서 어느 정도의 비축분은 다음 날을 위해 남겨두었어야 했는데, 항상 끝까지 써버린 데다 급한 날에는 무리해서 그다음 날의 에너지까지 빌려 썼으니 의욕도 기력도 빠르게 소진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게 내 본디 성격이었다면 한순간 우르르 무너지지는 않았을 터다. 약간의 변명을 보태자면, 세상이 나를 열심히 살게 만들었다. 남들 하는 만큼만 따라가면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타인 역시 주변을 보며 분발하기 때문에 결국 다 같이 인생의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게 된다. 여유를 갖고 걷는 사람들은 이 길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 멀리 뒤처졌거나 일찍이 성공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갈망은 결핍과도 같았다. 남들보다 부족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다는 탐욕, 세상에 내 능력을 알리고 싶다는 명예욕, 어떻게든 빨리 성공해서 지금의 고민과 불안을 떨쳐내고 싶다는 심리.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마음속에 깊이 쌓아왔던 감정의 잔해에 불이 붙은 것이다. 내 노력의 원천은 나의 욕망이었고,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불사르니 끝내 잿더미만 남아 더 이상 타오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뭐가 부족해서 남들보다 더 큰 조급함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 건데? 이 물음에 대해선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내 과거사를 전부 꺼내어 늘어놓아야 하니까. 상담 과정에서도 다 풀어내지 못한 나의 삶을 이 책에 줄줄 풀어낸다면 책은 ‘청소년의 우울 장애’라는 주제와 목적을 잃고 단순히 나의 자서전이 될 것이라 자세한 대답은 자중하겠다. 내 우울한 감정을 위주로 말해버려 이 책이 일종의 불행 포르노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건 사양이다. 이 책을 쓰고자 한 이유는 청소년이 겪는 우울을 나의 경험담에 녹여 설명하고 함께 우울증을 이겨내고 함이었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가난했다. 물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배곯으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어도, 남들보다 가질 수 없는 게 많았고 경험할 기회도 적었다. 동생들이 많아 장녀로서 동생들을 돌보거나 가정을 책임지는 한 명의 어린 어른이 되어야 했으며, 고집도 세고 한 성깔 하는 덕에 부모님과도 자주 다투었다. 무엇보다 가난에 대한 결핍이 심했는데, 그러던 와중 돈 못 버는 직업을 택하고 말았으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져 버렸다.



내 고민은 단순한 학업에 대한 걱정뿐만은 아니었다. 독학으로 문예창작과에 합격할 수 있을까, 입시에 성공해도 대학 갈 돈이 없으면 어떡하지, 빚을 내서 대학을 다녀도 취업을 못 하면 어떡하지, 작가로 데뷔해도 돈은 많이 못 벌 텐데, 엄마랑 아빠가 날 감당하지 못해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면 돈은 어떻게 벌지, 막내는 아직 어려서 나중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텐데 동생들을 돌볼 여력은 되나, 노후 준비도 안 한 것 같던데 그럼 부모님은 누가 부양하지…….



열일곱 살이 고민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걱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미래는커녕 현재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기에는 우리 집안의 사정과 내 과거사를 다 들려줄 수도 없었고, 그들은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아가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 나 혼자서만 쌓아두고 한숨을 지었다. 부모님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직간접적으로 느껴왔던 가난과 결핍은 단순한 노력으로 회복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원인이 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결함들이 뭉쳐지고, 거기에 작은 충격이 일어나는 순간 폭발하는 거였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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