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울증과의 첫만남
여기서 잠깐, 단순한 우울과 지속적인 증상인 우울증의 차이에 대해 다시 짚어보자.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의 정의에 따르면 ‘우울감’, ‘우울한 기분’은 누구나 느끼고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한다. 다만 이전보다 혹은 사회 통념상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비해 지나치고 오래 우울해한다면 기분을 조절하는 데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슬퍼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자신의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우울하다면 기분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데 병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자각하기 전, 살아가면서 우울한 일들은 많이 있었다. 가정 내에서 부모님과의 불화로 다툼을 하기도 하고 친구 관계에서 갈등을 겪은 적도 많았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동아리 활동에서 받는 스트레스, 학업과 미래에 관련한 고민 등으로 위클래스 상담실에서 종종 상담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우울증을 자각하기 전부터 우울은 이미 내 곁에 들러붙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을 겪기 전과 우울증을 겪기 시작할 즈음의 나의 심리 상태는 많이 달랐다. 이전에는 우울한 일이 있어도 며칠이 지나면 해결이 되었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거나 다른 일을 하며 우울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털어내려고 노력했다. 과거는 미화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즐거운 일들도 많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마음 아프고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찾아온 우울을 이겨내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전과 달리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고 버티게 해준 기둥이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학교생활도 즐겁지 않았고 집안에서도 나의 고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에는 집안의 불이 모두 꺼진 채 가족이 자고 있어, 숨죽여 씻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힘든 상황에 도움이 되어줄 사람이나 일이 없다는 것은 내게 고립감을 주었다.
보통 사람들은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운동을 하거나,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푸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우울감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자는 식으로 찾아오는 감정들을 잘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우울증을 겪는 당시에는 그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데에도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에도 집 안에서 잠만 자고 휴대폰만 하거나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바빴다.
내가 겪었던 증상 중에는 약간의 ‘강박 증세’도 있었다. 미래에 무얼 하며 먹고 살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대학교에 가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현재의 일상을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만 치중했다. 미래를 위해 공부하기, 미래를 위해 책 읽기, 미래를 위해 각종 공모전과 대회에 참가하기……. 이런 식으로 내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하거나 여가활동을 하면 할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한 나를 자책했다. 분명 사람은 생산적인 일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가정형편이 넉넉하다면 돈 문제에 연연하게 되지 않을 텐데, 내가 천재적인 필력을 갖고 있었다면 여러 대회에서 손쉽게 상을 타갔을 텐데, 내가 조금만 더 시간이 많았더라면, 내가 더 어릴 적에 이런 것들을 깨달았더라면……. 한 번 후회하고 아쉬워하니, 부러움은 어느새 열등감이 되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만큼 부풀어 올랐다. 내가 가진 특기나 장점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의 결점,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글을 썼다면 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아니, 계속해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행복이라는 감정을 영영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공부하고, 먹고 자야 살 수 있으니까 겨우 일상생활을 수행하며 살았다. 마음과 뇌 어디 한 군데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무엇으로 마음을 치료하고 채워 넣어야 할지 모르고 나를 채찍질하기에 바빴다.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우울감이 비대해지자, 마음속에 있던 감정 청소부가 놀라 도망가 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가득 들어찬 우울은 내 안에서 썩고 곪아갔다. 긍정적인 감정들이 살 수 없게 되자 ‘의욕 저하’와 ‘무기력’이 대신 자리를 꿰찼다. 정신이 점차 망가져 가는 게 느껴졌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기만 하던 마음속의 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단순하고 일시적인 우울감과 우울증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운 좋게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 교내 심리검사에서 고위험 판단을 받은 위기 청소년의 상담을 맡아주기 위해 찾아온 청소년동반자 선생님이셨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