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우울증과의 첫 만남
“저, 자퇴하고 싶어요.”
외부 기관에서 오신 상담 선생님을 향해 내뱉은 첫 번째 한 마디. 내담자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도 전에 먼저 본론을 들이밀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어보셨다.
“왜 자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니? 정해둔 계획이 있어?”
당시 나는 내가 자퇴하고 싶은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로 줄줄 설명했다. 선생님은 방금 내가 말한 이야기들을 종이에 적어서 사람들을 설득할 증거를 가져오라고 했고, 나는 상담이 끝난 후 즉시 ‘자퇴 계획 노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놀랍게도, 모든 것을 시도할 의지도 기력도 없던 내가 자퇴 노트를 쓰는 데에는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할 수 있었다. 학교를 떠날 수만 있다면 지금 나의 우울과 무기력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자퇴 계획을 쓰는 데에 집중한 건 잘못한 일이지만, 그만큼 나는 자퇴라는 선택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내가 해야 하니까, 의무적이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자퇴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은 ‘내가 직접 하고 싶어서’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흘 내내 자퇴 계획 노트를 짜는 데에만 시간을 보냈다. 이미 자퇴를 결심한 뒤 한 달에서 두 달 내지 동안 자퇴에 관련된 정보를 찾고 다닌 덕분에 노트를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자퇴 계획 노트를 상담 선생님께 보여드렸고, 담임 선생님, 진로 선생님까지 차례차례 설득해가며 자퇴를 실현하는 데 한 발짝씩 더 나아갔다.
일어설 희망이 다시금 생긴 기분이었다. 학교를 뛰쳐나가기 위한 가장 무거운 한 걸음, 부모님의 허락만 제외한다면.
여기서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자면, 나는 제법 학업과 친구 관계 그리고 방과 후 활동을 착실히 해내는 모범생이었다. 성적도 좋았고 항상 함께 다니는 단짝 친구 외에도 학교에서 인사를 나누고 대화할 친구들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서너 개의 방과 후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성취를 이루었고, 중학교 때도 연극부 활동에 집중하며 몇 개의 연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책 읽기를 좋아해서 매일 같이 도서관을 드나들었으니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집안에서의 나는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세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크고 작게 다투긴 했었어도 ‘자랑스러운 맏딸’, ‘믿음직스러운 자식’ 이미지를 잘 지키면서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 왔었다. 가족 수가 많아서인지 다른 가족들에 비해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항상 시끌벅적한 집안이었다. 이 부분은 지금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하지만 내가 자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순간, 나는 집안에서의 문제아가 되었다. 부모님의 골칫덩어리로 격하한 나는 입만 열면 부모님과 싸우기 일쑤였고 동생들은 소란스러운 집안의 상황을 외면했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들의 위로와 지지였지만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점에 가장 많이 상처를 받았고 자퇴하기 전까지 가족 고민으로 내내 힘들어했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고 지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가 때문에 포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내가 부모님의 성격을 닮아 견줄 만한 고집이 있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때 자퇴는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학교를 떠나는 선택이 아니면 앞으로 살아갈 의지를 갖지 못할 만큼 간절하고 위태로운 상태였다.
처음에 화를 내던 부모님은 졸업장만 따도 좋으니 성적은 신경 쓰지 말라고 애원도 했고, 학교를 옮겨보는 게 어떻겠냐는 설득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렸고, 내 마음은 그 누구보다 확고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퇴와 관련한 문제로 다투던 날, 울음을 참아내며 간신히 뱉은 한 마디가 떠오른다.
“엄마. 나 살고 싶어. 자퇴 안 하면 진짜 죽을 것 같아.”
부모의 입장으로 생각해봤을 때 얼마나 한심한 말이었을까? 그놈의 학교가 뭐라고, 자퇴 안 하는 게 뭐가 어때서 죽는다는 말까지 하냐고. 아마 우리 부모님도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학교에 가기 위해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준비하는 과정, 학교에 들어와 시간표대로 꼬박꼬박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과 하교 시간에는 도서부 활동을 하고 숙제와 수행평가 등을 해야 하는 일련의 루틴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매일 돌덩이를 등에 이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흔히들 페르소나라고 말하는 사회적인 내 인격과 실제 내 마음에 괴리감이 깊어질수록 우울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말인데, 친구들은 내가 학교에서 항상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죽고 싶다’라는 말도 많이 했다. 나는 밖에서는 최대한 괜찮은 척, 열심히 사는 척했는데도 긴장이 풀어지면 나도 모르게 힘든 티를 냈나 보다. 상담실도 자주 찾고 그랬으니 어찌 보면 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이 나의 우울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본론으로 돌아가, 그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우울했고 그 때문에 극단적인 성향으로 변한 상태였다. 그 당시에 휴학을 통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택했더라면 모를까,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학교를 계속해서 다니며 버틴다는 선택지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몇 달이나 이어진 끈질긴 설득과 다툼 끝에 자퇴 허락을 받아내긴 했다. 아니, 허락이라기보단 포기에 가까웠다.
긴 다툼이 끝나고 종전을 고했을 때, 나는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많이 다쳤고 많이 아팠다. 그리고 울고 싶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도.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