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안녕, 원인과의 이별

1장. 우울증과의 첫만남

by 나은진








본격적으로 자퇴원을 내기 전, 나는 학업중단숙려제를 거쳤다. 학업중단숙려제란 학업 중단 위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최소 2주 이상, 최대 7주까지 숙려기간을 부여해 그 기간에 상담 및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숙려기간에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출석이 인정되나, 학교 및 타 센터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나 상담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숙려 기간에 시험 기간이 포함되어 있다면 등교하여 시험을 치러야만 출석 및 성적이 인정된다.



숙려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퇴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도 있으나, 나는 고등학교의 방침에 따라 2주간의 숙려제를 거쳤다. 그리고 학교와 연계된 인근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주 1회 상담을 받으러 갔다. 단기적인 상담이었기에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고, 왜 내가 자퇴를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후의 계획이 있는지 등을 묻는 식의 간단한 질답이 이어졌다.



2주는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숙려 기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쉬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생들이 학교에 가고 부모님이 출근할 때까지 집에서 잠을 잤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가거나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고, 대부분은 집에서 생활하고 컴퓨터를 하며 글을 썼다. 2주 동안은 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 덕분인지 우울하지 않았다. 이렇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게 얼마 만인지, 입가에 미소 아닌 미소가 지어졌다.



물론 휴식 한 번에 모든 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폭풍전야 같은 시련들을 이겨내고 겨우 얻어낸 평화에 이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일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첫날 일기를 쓴 뒤로 자꾸 깜빡해 남은 것들이 없다. 제대로 기록을 잘해놓았다면 그 당시의 내 상태를 돌아보며 더 정확한 변화를 적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몸과 정신 건강을 회복하면서, 뇌가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당시의 기억을 무의식의 바다에 풍덩 담가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뇌리에 아주 강력하게 남은 기억을 제외하면, 나는 열일곱 살에 무얼 하고 살았는지 자세히 떠올리지 못한다. 상담을 하고 책을 쓰면서 겨우 끄집어낸 기억들이 힘겨웠던 내 과거를 겨우 대변할 뿐이다.



가끔 내가 학교에 안 나오는 걸 보고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없는 학교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긴 했으나 상념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내가 없어도 학교는 잘 돌아갈 거고, 곧 떠날 곳에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자퇴를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숙려 기간 동안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맹세컨대 자퇴를 한 이후에도 그냥 학교를 다닐 걸하고 후회한 적은 없다. 당시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학교에 자퇴원을 내러 갔다. 서류를 제출한 뒤 담임 선생님과 과목 선생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반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게 기뻤고, 반 친구들과 화목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더는 못 본다고 생각해 슬픈 것도 아니었다.



지난 시간 억지로 학교생활을 버텨왔던 나날들이 힘들었기 때문일까? 학기 초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했던 추억들이 뒤늦게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부끄럽게도 나는 인사를 나누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친구들은 당황하며 나를 위로해주었고, 내가 떠나는 길에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도 인사해주었다.



황급히 눈물을 추스르고 학교를 나와 차에 탔다. 집에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차를 몰았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고 묵묵히 목적지로 향했다. 나도 어디 가냐는 물음 대신 말 없이 뒷좌석에 몸을 맡겼다.



엄마와 아빠, 나는 그렇게 화양구곡으로 향했다. 중간에 차에서 내려 바깥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아침을 먹지 않아 빈속이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11월, 아마 글을 쓰는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오색으로 물든 낙엽이 바닥에 떨어져 휘날리고, 발에 밟혀 바스락 소리를 내는 가을. 제법 쌀쌀한 바람에 양팔을 쓰다듬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별로 찍고 싶지 않아서 엄마를 대신 찍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 저녁에는 외식으로 갈비를 먹었다. 여섯 명의 가족이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와 아빠가 구워주는 갈비를 먹으며 자퇴한 날을 기념했다. 축하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엄마와 아빠 나름의 위로였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 세상 밖으로 향하려는 나를 위한 응원, 그동안 싸우고 갈등을 맺어온 우리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 나는 말 없이 갈비를 씹었다. 흘러나올 것 같은 눈물을 시원한 찬물 한 잔과 삼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 일기를 썼다. 오늘 자퇴한 순간부터 있었던 일을 적은 일기였다. 이 한 편의 일기 덕분에 나는 그날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내일은 좀 더 나은 날이 될 거라고, 내가 짜놓은 계획표대로만 살아간다면 나는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일기를 다 쓰고 잠자리에 눕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생각에 잠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추면서,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우울과 5년째 동거 중입니다>는 주 1~2회 연재로 이루어집니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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