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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Dec 06. 2022

학교 밖 페미니즘, 나와 주변의 이야기

2021 하자센터 하자 필진 칼럼


2021 하자센터 하자 '필진' 페미니즘 에세이








나는 17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배우는 학습과 교육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걸 느꼈고, 내가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쓰기 위해 자퇴라는 길을 선택했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대입이라는 목표를 위해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 게 내가 원하는 길과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길을 걷기 위해 택한 길이었는데, 학교라는 불편한 제도에서 벗어나니 이제껏 체감하지 못했던 불편함과 차별 등을 깨닫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불편한 교복, 하지 않으면 오히려 눈치 보이는 화장, 교사들의 차별적인 시선과 가르침. 제도를 벗어나 자유를 느끼면서, 그동안 나를 억압하고 있었던 요소들이 생각보다 더 많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학교 밖을 뛰쳐나온 나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자퇴를 하기 전부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등의 주요 사건을 접하고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며 알음알음 페미니즘을 공부한 바 있다. 그러나 자퇴 후, 나는 기존 서적들을 읽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플랫폼 및 커뮤니티 등에서 알려주는 페미니즘의 정의, 운동 등을 학습하고 탈코르셋을 통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직간접적으로 알렸다.



물론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마냥 밝고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제도 밖을으로 나왔다고 해서 사회 및 사람들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게 아니듯이, 학교 안과는 다른, 혹은 같은 차별과 혐오를 겪게 된다.




내가 다니던 꿈드림 센터는 외진 곳에 있었다. 주택가나 대로변 등 안전한 곳에 위치한 학교와는 달리, 낮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센터를 가기 위해 길을 지나칠 때, 성인 남자들의 시선이 괜히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서둘렀던 기억이 난다.



학교의 대체 기관이라 할 수 있는 꿈드림 센터도 제도 밖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지원해주는 취업 활동 프로그램 중 여자 청소년들은 애견, 미용 등을 위주로 추천해주고 남자 청소년들에게는 힘을 주로 쓰는 목공, 전기 산업 등을 위주로 받는다고 한다.



이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성역할의 고정을 강화시키는 문제 요소 중 하나다. 또 청소년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여성 청소년들만 불러 모아 취업을 위한 ‘메이크업 및 퍼스널 컬러’ 교육을 진행해 청소년들에게 직접 화장법과 복장, 자세를 가르쳐주었던 때였다. 기관 딴에서는 남성과 여성 청소년 모두 희망자만 참여하면 된다고 하였지만, 성 이분법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자세, 옷차림 등을 명확히 규정지어 가르쳤다는 점에서 매우 불쾌감을 느꼈다.


우리는 학교 밖에서도, 안에서도 여전히 결만 다른 여성 혐오와 차별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2년이 넘는 학교 밖 청소년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무섭게 코로나 19가 덮쳐오면서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제대로 된 대면 수업 및 대학 생활을 만끽해본 적이 없다. 중,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고 한 공간에 국한되어 교육을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학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다만, 현 사회가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겪으면서 페미니즘이 활성화됨과 동시에 백래시 현상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척박해지는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도 힘드니, 젠더 갈등 역시 더욱 심해지는 기분이다.



다양한 대학교에도 각종 페미니즘 동아리와 소모임이 있다지만, 그러한 모임이 언제나 좋은 시선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각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모임인 ‘에브리타임’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혐오를 가리지 않고 드러낸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끌어와 비난하는 것은 물론, 교내에서 진행되는 페미니즘 관련 수업과 동아리 등을 테러하는 등 행위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조별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오픈채팅방에서 채팅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데, 누군가가 멋대로 오픈채팅방에 들어와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내뱉고 톡방을 테러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관심을 주지 않고 다른 톡방으로 자리를 옮겨 무시했지만, 이러한 테러 행위가 우리 학교뿐만이 아닌 다른 학교 및 수업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수들의 수업 태도와 방식은 어떤가. 사실 ‘스쿨 미투’ 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곳은 대학교가 아닌가 떠올리게 될 정도로 자신의 차별적이고 시혜적인 시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교수들도 많다. 친구가 다니는 과의 교수는 수업 중 성관계 행위 중 하나인 ‘스와핑’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이러한 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느니 하는 등으로 수업과는 관련 없는 잡담을 이야기하며 학생들을 은근히 성희롱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은 사회로 나아갈수록 보다 더 많은 혐오와 차별에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페미니즘 운동과 변화하는 세상을 보며 희망을 갖기도 하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혐오나 백래시를 마주하면 그만큼 분노와 절망감을 겪기도 한다. 



지난번 학교 안 페미니즘을 설명하며 현재는 페미니즘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지금의 암흑기를 견뎌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이제껏 세상을 바꾸었던 원동력이 우리의 힘이었듯,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나아가려면 작금의 상황을 견뎌내고 나를 점검할 시간도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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