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한 숟갈

by 한 나강

시작은 아이스크림 한 숟갈이었다. 파스텔 색상이 뒤섞인 시큼한 이름의 아이스크림은 아이가 아침부터 먹고 싶다던 거였다. 한 손에 꼭 쥐고 몇 번을 빨아대더니, 홍색 숟가락으로 정성껏 한입을 퍼 제 아비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아빠! 이것 좀 먹어봐!” 그러고선 저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닥속닥 귓속말을 해댔다.


살면서 여러 번 보아온 장면이었다. 일기장 표지에 캐릭터 스티커가 아닌 아빠의 증명사진을 떡하니 붙여놓은 아이. 언젠가 아빠에게 혼이 났던 날엔 그냥 떼어 버리려다 귀퉁이가 조금 찢어자 그게 너무 불쌍해서 다시 붙여놓았다는 아이였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나보다 덜 강압적이고, 아이를 대하는 성정이 비교적 부드럽고 너그러운 아빠다. 이런 사람에게 마음을 더 주는 건 강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자연을 거스를 방도는 없다.


단지 말이다, 한 번 흘렀으면 여기까지 오긴 와야 할 텐데. 받아먹겠다고 하류까지 뛰쳐 내려간 마음이 머쓱해진다. 아이는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것 같다. 엄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서, 신 걸 워낙 싫어하니까, 아빠랑 얘기하다 보니, 뭐 나름의 이유들은 있었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때때로 목이 마른 일이다.


정말이지 ‘딱 한입’을 원했다. 아이와 함께 할 체험거리를 찾느라 가렵고 건조한 눈을 벅벅 비벼댔던 시간들 전날 밤 열두 시 무렵까지 야심 차게 짜둔 일정, 아주아주 신나는 하루가 되길 바랐던 마음 등등. 그나마 이런 것들이 그 '한 입'을 가질 타당함으로 자리 잡은 것인지 느닷없이 속이 불끈거렸다.

갖고 싶은 물건 일 년 내내 장바구니에 넣어만 두고, 내가 읽을 책들은 서점 보다 도서관에서 구며, 가고 싶은 곳이 아닌 가야 할 곳에 가면서도 스스로 괜찮고 믿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어떤 실질적인 대가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인지 모른다. 작고 귀여운 손을 뻗어 내게도 이런 말을 해주길 남몰래 기다리면서.


“엄마, 이것 좀 먹어봐!”

“내가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어!”


엄마는 왜 주어야만 하나.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과연 나는 엄마로서 사랑을 주었던가. 주었던 때도 못 주었던 때도 있었다. 반반이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솔직히 어느 쪽으로 기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바란다. 내 주제에 큰 건 됐고 달랑 아이스크림 한입을. 염치없이 더하자면 아이가 힘들 때 날 불러주고, 찾고, 그리워하기를. 한입만큼은 사랑받는 엄마이기를. 먼저가 아니어도 좋으니 선뜻 내게도 손을 뻗어 주기를. 부디 그만한 자격이 내게 있기를. 비록 생각한 바를 정갈하게 풀어낼 능력이 없어 유아기로 회귀해 울음 섞인 일갈로 마무리를 하였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 한 숟갈에 남은 앙금이 여태 리지 않고 있다. 바라는 것 없이 주어라. 돌려받을 생각일랑 말아라. 이 같은 현자들의 말에 치기 어린 한 어른은 답한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스크림 한 입 정도는 바랄 수 있잖아요.”

앙금은 앙금으로 두고. 이제 내게도 물어보아야 했다. 나는 뭘 원했는지. 어디로 가고 싶었고, 무얼 하고 싶었는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휴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나 명절은 더하다. 달력을 꺼내 날을 '미리 보기'까지 하던 설렘이 한때 내게도 있었지만, 이제는 뒤로 '건너뛰기'를 해야만 견딜 수 있는 다른 의미에서의 특별한 날로 변질되었다. 어른은 받기보다 주어야 한다. 어른은 즐겁기보다 즐겁게 주어야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어른도 즐거워야 하고 어른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섭씨 37도에 육박하는 날 단지 아이의 즐거움을 위해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선, 막판에 그놈의 아이스크림 한 입 때문에 굶주린 들개처럼 길바닥에서 컹컹거리는 짓을 미연에 지할 수 있다.

세상에 누구 하나 몰라주더라도 나까지 몰라서는 안 된다. 노랑괭이밥처럼 달뜬 목소리가 제 아빠만 찾아 부를 때, 담뿍 담긴 한 숟갈의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할 때, 그러고선 셋이 함께인 시간을 둘이서만 나눠 질 때, 빙하가 갈라져 무리에서 홀로 뚝 떨어진 펭귄새끼 못지않게 당황스럽고 외로운 순간, 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고통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언제나 나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상처는 단순히 아이스크림 한 숟갈에서 비롯된 것이 아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런가 싶더라도 절대 속아선 안 된다. 푸고 또 푸다 보면 밑바닥에 이르러서야 알게 될 것이다. 이스크림 한 숟갈은 넘실대는 기름 위에 떨어진 작은 불꽃에 불과하다는 걸.


언제부터 쌓아온 건지 모른다. 어느 날은 턱밑까지 차올라 까딱 잘못하면 꼬르륵 숨이 넘어갈 것도 같다. 힘들어서 화가 고, 화난 들개는 언제든 물 준비가 되어있다. 러니 살아남으려는 본능을 비난하기보단, 금껏 누적된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알아봐 주어야 한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른이다.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 수 있음을, 그 작은 일이 결코 작지 않는 것을 안다. 노의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그 끝이 창대하리란 것도 잘 안다. 지금 내가 외롭고 고통스럽단 사실 또한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