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두 마디만 한 크기에 머리 쪽에 붉은색 줄이 선명히 나있었다. 당시엔 남생이로 알고 데려왔지만, 내가 다 커서 알고 보니 붉은 귀 거북이(이하 붉은 귀)였다. 북미에서 온 잡식성 거북이로 2009년 우리나라에선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놈이다. 내겐 작고 귀여운 꼬마들이었을 뿐인데, 이 녀석들이 한국 토종인 남생이의 터전을 위협하고 먹이로도 부족해 이름까지 빼앗아버린 거였다.
<피구왕 통키>가 끝나면 딱히 볼 것도 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총 두 마리를 키웠는데 무료하다 싶으면 끄집어내 경주를 시켰다. 저쪽 끝이래봐야 2미터 남짓인 좁은 방구석에서 출발 신호와 함께 바닥을 두드려댔다. 앞서 말한 피구왕 통키의 주제가를 부를 때 빼고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동물 학대가 아닌가 싶다. 헤엄칠 때마다 가로막힌 벽에 기만당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나, 내키는 대로 풀어주곤 기어 오라고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마도 그래서였을 수도 있다. 그중 한 마리가 수조를 탈출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쩌면 잠깐씩 맛보았던 바깥세상이 자신에게 꼭 맞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붉은 귀의 가출이 내심 충격적이었던지 다른 한 마리는 기억에 별로 남지 않았다. 그때 내가 울었는지 어쨌는지도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으나, 다만 몇몇 장면만큼은 머릿속에 박제된 듯 선명하다. 특히 실종 이후 석 달이 지나 다시 나타난 붉은 귀의 모습은 머리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평생 망각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사하기 위해 장롱을 옮긴 뒤였다. 먼지와 고무줄, 동전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었던 건 산 채로 기어 나오던 붉은 귀였다. 녀석은 버썩 마를 대로 마른 채 공기보다도 가벼워 보이는 몸체를 느릿느릿 놀렸다. 후 불면 날아갈 것처럼, 그럼에도 영영 멈추지 않을 것처럼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엄마는 어째서 저게 아직까지 살아 있는지를 연신 물어왔지만, 짐작건대 나는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모르는 건 똑같으니까. 단지 확실한 건 그것이 어두컴컴한 장롱 밑에서 홀로 사투를 벌였을 거란 사실뿐이었다. 자그마치 반수생동물이 물 없이 몇 달을 버틴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워낙 습했던 그 집의 환경이 일부 도움이 됐을 테고, 넘쳐났던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부족한 수분을 보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붉은 귀의 생존력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놈의 기어가는 꼴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게 분명하다.
어렵게 다시 만난 녀석을 도시의 저 끄트머리에 있는 한 호수에 풀어주었다. 따지고 보면 결국 생태계 교란의 원흉은 붉은 귀가 아니라 나였던 셈이다. 그놈의 입장에선 오로지 자기 배를 채우려 했을 뿐 남생이를 배곯게 할 생각까진 없었을 터다. 이런 이유로 추궁의 손가락질은 나에게 와야 마땅함을 밝히며, 붉은 귀 거북이의 오명을 이제라도 벗겨주어야겠단 생각이다.
이따금 잠긴 서랍을 툭 건드리듯 그때의 기억이 스치기도 했다. 마트의 애완동물 매장에서 물고기 밥 냄새를 맡으면, 구름 모양의 수조에 둥둥 떠 있던 붉은 귀의 식사가 그려졌다. 거기다 입을 삐쭉 내밀던 고놈의 식탐이나 앙증맞게 휘적거렸을 네 발은 상상으로 더했다. 아이와 함께 간 수족관에서 커다란 거북이를 볼 때도 내가 아는 그것이 겹쳐졌다. 고작 열 살짜리의 손바닥 위에 뒤집힌 채 노란 배때기를 맡겨야 했던 모습에다 물때가 끼어 미끈거렸을 촉감쯤은 알아서 덧대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난 걸까. 여긴 애완동물 매장도 수족관도 아닌데. 그 녀석과 관련된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는 지금 어째서 벌컥 열어젖힌 마음속에 애 닳게도 새빨간 줄을 머금은 그것이 날 바라보고 있는 건지. 늘 상징으로만 등장하는 꿈의 언어를 베껴 현실에서 알아채기엔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종일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아이와의 소통이 유독 어려웠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조금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낮에 잠깐 어지럼증이 도졌으며, 피부 발진도 다시 시작되었다. 더 대라면 댈 수도 있겠지만, 가끔 나의 우울은 그럴듯한 이유들에 한참을 앞서곤 했다. 덧칠해 봤자 계속 검을 뿐인 새벽 네 시의 밤하늘처럼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쿵 하고 떨어지고 마는 어둠이었다. 늘 그렇듯 그 힘 앞에서 아무 말을 못 하고, 밀도 높은 공기 속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선 떠오른 게 바로 붉은 귀였다.
생태계 교란종. 평화로운 호숫가에 쳐들어 온 이방인 같은 놈. 돌연 남의 먹이를 빼앗고는 이제 주인 자리까지 넘보는 약삭빠른 녀석. 음침한 곳에 몸을 숨기곤 되는대로 먹어치우며 버텨낸 독종이기도 한 붉은 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한 죄밖에 없는, 다름 아닌 나로부터 버려진 모든 것들.
반기는 이 하나 없는 이 땅에서 살겠단 의지 하나로 욱여 삼킨 날들이 있었을 터다. 실은 그런 다짐 없이도 살아낸 본능적인 힘이겠지만, 당하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한 압박과 공포가 없다. 녀석을 꼭 닮아 슬프기도 무섭기도 한 나의 마음은 평생을 낯선 곳을 배회하며 안녕을 뒤흔드는 포식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오늘도 붉은 귀는 이름도 모르는 호숫가에 버려진 채 따가운 시선을 감내한다. 그 누구보다 서러워야 할 마음을 홀로 짊어지고서. 엉뚱한 곳에 떨어졌단 이유 하나로, 주어진 생을 감당하는 자체로 온갖 질책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사실 가려던 곳이 거긴 아니었는데. 그날 붉은 귀가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둘 것을. 내가 가만히 기다리질 못해 녀석이 하고픈 말을 듣지를 않고, 그냥 그렇게 아무 데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