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12년.
경제활동을 안 한지 딱 그 정도 되어간다. 10년은 작정하고, 나머지 2년은 운명적으로. 오로지 아이를 위한 희생인 것 같지만 그게 전부인 건 아니다. 지난 여정을 돌이켜봤을 때 결국 대부분이 나 좋으려고 택한 길이었다. 그 옛날 어두운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문구점을 배회하던 기억 때문일까, 숙제는 했는지 콩은 왜 안 먹는지 참견하고 봐줄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아무튼 나는 아이가 좀 크고 나서도 학교에서 돌아온 뒤의 모든 순간을 곁에 있는 것으로 그 시절의 허기를 채워갔다.
실은 모녀간의 추억이라는 게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굶주린 욕구를 몇 입 달랬다는 것 말곤 별 대단할 게 없었다. 오히려 아이는 영험한 물처럼 순수해서 나도 모르게 짊어졌던 불안을 더없이 맑게 비추었다. 덕분에 어딘가 떼어 놔야만 버틸 수 있었던 무게는 두 배가 되어 날 짓누르곤 했다. 꼭 옆게 끼고 있어야만 안심이 되었고, 아이는 그런 초조를 나에게서 곧잘 옮아갔다.
그 영원할 것 같던 지킴이 역할도 이제는 끝이 보이는 듯하다. 어제만 해도 좋은 자리로 예약해 둔 도라에몽 극장판을 포기하고는, 장장 여섯 시간을 친구와 땡볕에서 놀다 들어왔다. 저녁밥만 아니었음 밤새 안 들어올 태세였다. 같이 도서관에 가기로 해놓고선, 오늘 아침엔 가기 귀찮다는 말을 필두로 몇 시에 돌아오느냐는 둥 늦으면 안 된다는 둥 쉬지 않고 구시렁댔기에 그냥 집에 있으라 했다. 아이는 벌써부터 저만치 떨어져 독립운동을 펼치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연해주에 당도할 것도 같다.
재작년부터 이미 결심은 했었다. 새끼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어미가 한가로이 노니는 시간도 같이 늘어났다. 역할의 상실은 곧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왔고, 독박육아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로 인한 허탈감에 난감해하곤 했다. 그러니까 느닷없이 행동개시를 했던 건 일을 할 때가 되어서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원래 하던 일과는 더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 포기하고, 미리 따두었던 자격증만 믿고선 호기롭게 인생 제2막의 문을 열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입학, 첫 직장 그리고 첫 서류전형 탈락. 면접에서 떨어지는 기분은 엉엉 울어도 봐서 잘 알지만, 이력서부터 홀대받은 건 처음이라 못내 당황스러웠다. 어려서부터 비빌 언덕을 잘도 알아보았던 나는 애초에 떨어질 곳엔 마음을 두는 법이 없었다. 자그마치 돌다리형 인간이 그놈의 돌다리를 너무 두드리다 무너져버린 걸까. 절절한 연서를 보냈다가 답장도 없이 까였던 기억처럼 다시 돌려 달라 할 수도 없는 나의 지난 구애가 창피했다. 한 번이면 족할 짓을 몇 번을 더 하고 나면, 어두운 밤마다 과연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심각하게 자문하게 된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란 사실을 인지한 뒤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자 싶어 봄철에 파종하듯 이력서를 뿌려댔다. 나 좀 봐주소. 아직 쓸 만하다오. 이젠 더 내려갈 곳도 없건만 왜 자꾸 미끄러지기만 하는 건지. 정녕 내가 그리도 모자라다면, 어디가 어떻게 모자란 건지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다행히 몇 군데서 연락이 오긴 했으나 잊을 만하면 전화하는 옛 남자친구처럼 쓸모없는 얘기만 늘어놓다 끊는 식이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겨우 한 곳에 붙고는 그날 저녁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영영 못 나갔다.
상담사는 내가 가진 신념이 꽤나 부정적이라 일러줬는데, 최근 몇 년간은 가뜩이나 못난 믿음이 더 굳건히 다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딴에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못난이 인형처럼 떼쓰는 마음이 불쑥 일어났다. 나의 사십 대가 이럴 거라곤 상상도 안 해봐서 미처 대비를 못했다. 솔직히 지금도 나 없이 잘만 굴러가는 세상에 섭섭한 마음 금치 못하겠다.
경력 단절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 ‘경력’이란 당연히 사회경제적인 면에만 국한된 의미다. 원래 사전적으로는 ‘여러 가지 일을 겪어온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단순히 살아온 경험만 가지고 경력이라 하진 않는다. 현대 사회에선 오로지 ‘지금까지의 직업 및 학력’만이 당당히 경력이라 불릴 수 있다. 고로 나는 무려 12년간 경력에 있어 無의 구간을 지나왔다는 말이 된다. 이쯤 되니 섭섭한 데 더해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여 이 모호한 경계를 좀 더 명확히 해서 그간 쌓였던 오해를 풀고자 한다.
경력 단절은 ‘오랫동안 경제활동이 정지된 상태’다. 애를 낳아서, 몸이 아파서 또는 여타의 이유로 이런 직업적인 경력은 얼마든지 단절될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은 여기에서 그치질 않으니까 문제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단절된 경력을 삶의 어느 구간이 통째로 잘려 나간 것으로 확대해석한다. 그렇게 되면 끊어진 기간 동안의 무수한 경험들이 무가치로 전락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진다. 자의 또는 타의로 노동시장에서 장기간 이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존감까지 흔들리고 마는 게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렇다. 나름 가치 있는 생을 살았다고 아득바득 우겨봤자 머릿속에만 맴도는 공염불이다. 새벽 두세 시쯤 눈이 떠지면, 텅 비어버린 12년의 시간이 아득하고 아찔한 절벽이 되어 나를 위협한다. 아무도 미는 사람이 없는데, 기껏해야 몇몇 아는 얼굴들의 조롱 섞인 농담일 뿐인데도 어느새 이 육체는 비명의 메아리도 삼켜버린 채 아래로 아래로 꺼져간다. 난생처음 저 사라져 가는 인간이 좀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천덕꾸러기 같은 인생일지언정 남의 손에 함부로 잘리는 게 싫다. 애면글면 그려온 나이테가 단지 경제적인 값어치를 못해 칼같이 끊어지고 마는 게 속상하다. 남들이 인정할 만큼 대단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나름 열심히 뻗어낸 가지 하나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다. 열매도 아닌 고작 꽃 한 송이 피우려 뙤약볕에 마른 흙을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인간임을 나는 안다. 아직 뿌리가 얕아 지하수를 머금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살기를 포기하거나 자라길 멈춘 적은 없었다. 이런 경력도 실로 만만치 않아서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버텨낼 수 있음을 평생을 통해 증명할 수도 있다.
오늘도 굳이 존재하려 애쓰는 나에게 말했다. 그냥 있기만 해도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같이 나 역시 그런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여태 나를 지켜주는 이가 없거든, 이젠 울기보다 한 번쯤은 물어보라고 했다. 오늘 나를 지켜 줬는지. 따뜻한 밥을 주고, 자주 들여다보고, 무의미한 잡담을 잘 들어줬는지를. 잘하진 못해도 흉내는 냈던 엄마로서의 나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버팀목이 되어주길 소망한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지워지지 않으려 발악하는 아이를 아까부터 침묵 속에 바라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