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친다

by 한 나강

때때로 너저분한 집안을 마주할 때마다 청소기로 죄다 빨아들여 창밖에다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내 마음 안에도 그런 어지러움이 늘 있어왔는데, 처음부터 이런 처참한 모습을 기대하며 살았던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사람의 말에 베이고 찢기고 멍들었다가 탓할 대상이 숨어버린 상태에서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분노가 원흉이었다. 깨어진 마음은 여태 날이 선 채 떨고 있는데, 대차게 밀어붙인 파도마저 가로막힌 절벽에 부딪고는 반사파(反射波)가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소리치는 마음과 하는 수 없이 튕겨져 되돌아온 마음이 만나, 한 순간 높이 솟아오른 배를 홀라당 뒤집곤 했다. 그렇게 난장을 친 속은 소란스럽지 않은 날이 별로 없었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것들은 서로를 할퀴고 때리며 잦은 상처를 내었다. 이 생각과 저 생각의 대립은 상대와 나의 붉어진 두 눈만큼이나 무섭고도 살벌했다. 믿을 수 있는 하나의 가치관을 잡아채고 나머지 부산물들을 떨쳐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이를테면 ‘나는 매우 화가 난다.’에서 시작해 ‘화는 나지만 피할 수가 없으니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란 하나의 지주대를 세운 뒤, ‘그럼에도 나는 존중받을 필요가 있으므로 제까지 이 화는 정당하다.'라고 솔직하게 끝맺을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매몰차게도 아파서 드러누운 나 자신에게 ‘과연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옳은가.’하는 질문을 던지곤 ‘상대의 행동이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란 확언을 했다가 ‘아무래도 이만 관계를 끊어야겠지.’라는 결론을 거쳐, 끝내는 ‘이런 식으로 흘려보낸 인연들이 참 많이도 있었지. 내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어쩌면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으레 하나의 답으로 귀결되는 이상한 파동을 따르곤 했다.

학습된 무기력.

아무도 내 이야길 들어주지 않고, 어디에서도 이해받아본 적 없으며, 이 모난 마음을 드러낼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결국 종착하게 되는 곳. 원망할 수 있는 게 고작 나 하나뿐이라 그것에다 대고 온갖 모진 말들을 쏟아 붓게 되는 병. 나와 내가 부딪쳐 드높은 파봉(波峯)에 수없이 올랐다가 하염없이 떨어질 선체를 붙들고는 불안에 떨었던 날들. 이윽고 산산이 부서진 것들과 뒤섞인 채 조각난 심정 하나로만 망연히 버텨내었던 그때. 언제나 상처를 준 사람은 말이 없고, 나조차도 스스로에게 너그럽질 못했으니까.

사건의 중심에서 내가 화가 났다고 소리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너의 말이 내게 상처가 되었기에 틀린 것이며 여기에 다른 이유 따위는 필요없다, 라는 이 한 마디를 하는 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보다 만만한 것의 볼기짝을 때리고, 몽둥이질을 하고, 발가벗겨 내동댕이치곤 했었다. 그러면 잠잠해지리라 여겼던 건 그저 나의 착각이었지, 진실은 아니었다.

내야 할 때를 몰라 감춰둔 소리는 언제고 메아리쳐 고막을 찢어 놓는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기억들이 온몸을 부딪으며 외로운 고립파(孤立波)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해서 소리 내는 법을 잊어서는 안 되고, 나의 고함에 저 높은 벼랑이 더 매서운 파도를 되돌려준대도 벌어진 상처를 가벼운 웃음으로 덮어선 안 된다. 아파야 할 때를 놓치는 건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영영 버리는 것과도 같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바 나를 지키는 길은 항상 외롭고 고되지만,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매번 걷어내고, 진짜인 것을 놓지 않는 힘. 그것이 남에게서 인정받지 못할 보기 싫은 흉물이라 하여도, 결코 내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겠단 결심. 나 너에게 화가 났노라, 하고 뇌까릴 수 있는 진심.

여전히 무질서하고 시끌시끌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그날들을 되짚어본다. 다만 어제와는 종착지가 다른, 이제 너에게로 향한 마음을 내어본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화내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연신 주문을 외며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나름의 균형을 맞추려 묶어 었던 한 팔을 올린다.


어쩔 수 없이 이 마음엔 오늘도 파도가 친다. 나를 덮쳐 흠뻑 적셔질 원망을 두려워 말고, 허공에서 깨어질 마음도 각오하고, 혼자서만 부서지지 않을 그런 세찬 파도가 여기에서 저기로, 네가 선 그곳으로 진행파(進行波)가 되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