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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가레보시 Feb 26. 2023

봇치 더 록!

온 세상이 봇치다


누군가 내게 2022년을 뜨겁게 달군 애니메이션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봇치 더 록!>을 꼽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2009년의 <케이온!>을 2022년의 <봇치 더 록!>이 드디어 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러한 <봇치 더 록!>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사실 원작은 평범한 네 컷 만화 수준 아냐?’ 나는 이 말을 반박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으나 1권에 한해서 <봇치 더 록!>은 평범한 네 컷 만화가 맞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애니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1권에서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의 진가는 2권에서부터 나타난다. 1권에서 확립된 캐릭터성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럼에도 나는 불안했다. 이 작품은 네 컷 만화였기 때문이다.


네 컷 만화, 똑같은 크기의 칸이 네 컷으로 분배되어 있는 만화를 말한다. 이러한 네 컷 만화는 필연적으로 일반 컷 만화에 비해 연출에 있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많은 네 컷 만화가 연출하기 쉬운 미소녀 일상물 장르로 만들어졌고, 그 총체가 바로 오타쿠들 사이에서 흔히들 회자되는 망가 타임 키라라의 만화, 즉 ‘키라라계’ 만화다.


<봇치 더 록!> 역시 키라라계 만화에 속한다. 그러나 간단한 네 컷 속에서 내용 없이 미소녀들이 하하호호 떠들기만 하는 다른 키라라계 만화(특히 만화 <케이온!>)와는 달랐다. <봇치 더 록!>은 미소녀 일상물의 특성을 분명 보유하고 있으나, 동시에 프로를 지향하는 메인 스토리 역시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진행되는 코미디는 가히 압권.


우선 메인 스토리에 관한 연출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봇치 더 록!>의 메인 스토리는 히토리, 니지카, 료, 이쿠요로 이루어진 밴드 ‘결속밴드’가 프로 데뷔를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이는 일상에 가려져 있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일상 파트 중간 중간에 결속밴드를 위한 메인 이벤트를 삽입하여 스토리를 조금씩 진행시키고 있다.


일반 컷 만화로 연출되는 임팩트 장면은 이러한 메인 스토리의 진행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특히 4권의 ‘미확인 라이엇’ 이벤트 속 결속밴드의 모습은 일반 컷 만화로 연출되어 주인공들이 목표를 향해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나타냈다. 또한 이 이벤트는 결속밴드가 프로를 향할 수 있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는 레이블 입성으로 연결되기까지 한다.


이제 하이라이트인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이야기하자면, 나는 <봇치 더 록!>보다 뛰어난 코미디 네 컷 만화를 딱 하나밖에 알지 못한다. 바로 <아즈망가 대왕>이다. 그러나 이 만화는 전설의 반열에 든 명작이므로, <봇치 더 록!>이 이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봇치 더 록!>의 코미디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봇치 더 록!>의 코미디는 크게 두 가지로 양분할 수 있다. 하나는 고토 히토리의 기행, 또 다른 하나는 결속밴드 멤버들과 주변인들의 만담이다. 우선 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히토리의 기행의 원천이 되는 아싸 행동은 현실적이면서도 만화적으로 코미디화 되어 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아싸로 살아온 내가 하는 이야기이니 신뢰도는 높을 것이다.


히토리가 보여주는 기행은 정말 재미있다. 교실에서 잠자고, 인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 등 아싸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기행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아싸와 평범한 사람 모두에게 웃음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코미디 요소인 만담은 어떨까? 이 역시 히토리의 기행이 선사하는 코미디와 유사하다.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다.


히토리의 기행은 아싸라는 그녀의 캐릭터성이 코미디화 된 것이다. 이처럼 만담 역시 코미디화 된 결속밴드 멤버들과 주변인들의 캐릭터성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 다정하지만 유약하기도 한 니지카, 마이페이스 료, SNS 중독자이자 인싸인 이쿠요, 극도의 츤데레이자 시스콘인 세이카 등의 캐릭터성이 그대로 코미디화 되어 만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합쳐서 질문해보자. ‘히토리의 기행과 등장인물들의 만담은 어떻게 연출되는가?’ 이것이 바로 이번 리뷰의 핵심이다. <봇치 더 록!>은 네 컷 만화이다. 따라서 연출의 제약이 분명 존재한다. 작가 하마지 아키는 이러한 제약을 네 컷 만화의 특성을 통해 극복해낸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 ‘네 컷 만화의 특성이란 것은 또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네 컷 만화는 같은 크기의 칸이 네 컷으로 분배되어 있는 만화다. 하마지 아키는 이 특성을 이용했다. 같은 크기의 칸이 존재한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화면 연결 및 반전을 연출한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바로 전 컷에서는 히토리가 자기도 인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생글생글해 있다가, 바로 다음 컷에서 난제가 나타나며 기행을 벌이는 식이다.


만약 컷이 다양한 일반 만화였다면 이 연결 및 반전은 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마지 아키는 같은 크기의 컷이 이어지는 네 컷 만화를 그리는 작가이므로, 화면비가 존재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용되는 화면 반전의 연출을 활용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할까? 4권의 결속밴드의 시모키타자와 산책 편을 예시로 들어보자.


시모키타자와 산책 도중 중고품점 ‘하드오프’를 발견한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악기 용품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쿠요는 그쪽과는 거리가 먼 멤버이기 때문에, 히토리를 데리고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나 이게 웬걸, 히토리 역시 멤버들처럼 악기 용품에 빠져있었다. 이에 이쿠요는 절망하며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소외감’이라는 나래이션이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바로 화면 연결 및 반전 연출의 모범이다. 니지카와 료가 악기 용품에 빠져있는 장면, 이쿠요가 히토리를 데리고 빠져나가려는 장면, 그러나 히토리도 악기 용품에 빠져있는 장면, 이쿠요가 절망하는 장면이 같은 크기의 칸에서 차례대로 진행되면서 ‘다음 컷에서는 어떻게 될까?’라는 독자의 호기심을 순서대로 증폭시키고, 끝내 코미디로 웃기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만화 <봇치 더 록!>은 절대 애니메이션의 명성에 기대는 작품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덕분에 팔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작품성이 없는 만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만화 <케이온!>을 보시라. 야마다 나오코 감독과 교토 애니메이션의 손길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화 덕에 팔렸지만, 작품성이 있는 만화는 아니다.


<봇치 더 록!>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지금은 거장이 된 야마다 나오코 감독과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 교토 애니메이션의 주도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화라는 행운으로 떴다가 지금은 져버리고 만 카키후라이의 <케이온!>처럼 그 때 그 시절의 만화로 잊히지 않을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끝내 나는 기대한다. 작가 하마지 아키의 만화를, <봇치 더 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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