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짐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단 하나
최근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들을 여럿 감상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과 콘 사토시 감독의 <천년여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번 글에서 리뷰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파벨만스> 역시 앞서 이야기한 두 작품들처럼 영화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세 작품들 중에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는 어느 정도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빌론>은 감독이 동경하던 세계를 필름 속에 재구성하여 영화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러나 <파벨만스>는 감독 본인이 지나왔던 세계를 카메라로 재구성하여 영화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나는 두 작품들 중에서 <파벨만스>가 더 뛰어난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자에는 본인이 직접 겪었기에 깨닫게 된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갈라짐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단 하나
영화 <파벨만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영화라는 두 존재를 사랑이라는 마음을 통해 하나로 엮어낸 후, 어째서 두 존재 중 영화가 사랑하는 존재로 선택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도 주인공 새미의 친척 할아버지가 새미를 향해 일갈하는 장면을 통해 공인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파벨만스>의 초반부를 보고 있으면 파벨만 가는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화목함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파벨만 가는 그 구성원인 새미 파벨만에게 상처만을 줄 뿐이다. 이로 인해 새미는 서서히 파벨만 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영화라는 존재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영화 <파벨만스>가 2시간 30분 동안 펼쳐내는 이야기이다. 우선 갈라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파벨만 가가 갈라지고, 끝내 새미 파벨만이 영화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임과 동시에, 어머니를 너무 깊이 이해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분명 새미에게 영화적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의 재능을 취미의 영역으로 한정시켜 버리고, 끝내 상처 입히고 만다. 이로 인해 새미와 아버지는 앞날을 두고 여러 번 충돌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아들에게 캠핑 영화의 편집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편집은 새미를 다시 한번 상처 입힌다. 새미는 캠핑 영화를 편집하며 필름 속에 담긴 가족들의 모습에 행복해한다. 하지만 필름은 카메라가 담은 화면을 오롯이 보존하는 물건으로, 그를 상처 입힐 모습마저 담아버리고 말았다.
필름 속에는 어머니가 친한 아저씨와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에 새미는 큰 충격을 받지만, 그럼에도 영화 속에 그 충격을 담아내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의 의뢰에 맞추어 모친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고,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것처럼 편집한다. 이에 어머니는 새미를 향해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는 호평을 듣지만, 이는 오히려 그를 더욱 상처 입힌다. 이 말은, 물론 어머니는 몰랐겠지만, 새미가 어머니의 불륜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대사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하여 새미는 가족들보다도 영화를 더욱 사랑해 가기 시작한다. 그는 친구들과의 전쟁 영화 촬영 중 주인공을 맡은 친구를 연기에 몰입시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족들의 싸움을 필름 속에 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새미 파벨만은 영화에 미쳐간다.
이후로도 새미는 자신의 슬픔과 영화를 구분 짓지만, 끝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괴롭혔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좋은 학생이었던 로건을 멋지게 연출하며 화해하는 장면이 그 예시이다. 이는 친척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새미가 가족과 영화 중 후자에 점점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전에도 새미에게 영화적 재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장면들은 존재했지만, 땡땡이의 날이 상영되는 장면은 새미가 가족의 평가에서 벗어나 오롯이 타인인 로건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이 새미가 완전히 가족의 손을 떠나게 되는 장면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완전한 타인에게서까지 새미의 재능이 인정받는 장면이 등장했다는 것은, 물론 감동적인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과 결부시켜 보면 꽤 쓸쓸한 장면인 것 같다.
앞서 나는 새미의 꿈에 있어 어머니는 그를 인정해 주었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작품의 최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다루어진다. 어머니는 예술가였다. 그렇기에 이혼이라는 새로운 길에 앞서 마지막으로 새미를 격려하고, 응원해 준다. 그러나 아버지는 새미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그를 이해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행복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오열하기 시작하며, 생각은 달라진다. 아들에게는 영화만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인정해 준다. 그렇게 새미 파벨만은 가족의 갈라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이 영화의 제목은 <파벨만스>이다. 이는 한국어로 '파벨만 가'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제목을 떠올리시기 바란다. 이 제목은 파벨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그 가족의 품을 떠나는 이야기를 조화롭게 포함해 내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 다다른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여기저기 지원하던 새미 파벨만은 끝내 명감독 존 포드와 대면한다. 포드는 새미를 시험하며, 조언한다. '지평선이 화면의 상단과 하단에 있을 때 관객들은 흥미로워하고, 가운데에 있을 때는 지루해한다.' 이 장면을 주어진 정보로만 보면, 영화감독을 꿈꾸는 젊은이 새미 파벨만과 명감독 존 포드가 대면하는 것이지만, 영화의 진정한 주제를 상기하고 보면 영화와 사랑에 빠져버린 한 인물이 영화 그 자체와 대면하는, 즉 사랑하는 상대와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조언을 받고 사무실을 나온 새미 파벨만은 새롭고 행복할 앞날을 향해 걸어 나간다. 우울하고 지루했던 과거는 아래로 향한 지평선과 함께 흥미로운 미래로 탈바꿈된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의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