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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가레보시 Apr 17. 2023

거울 속 외딴 성

상처 뿐인 해결보다도 희망찬 나아감을


상처와 아픔은 반드시 그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지금의 사회는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혹은 광기에 가득 찬 모습으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발맞추어, 사실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상처와 아픔이라는 요소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요소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리뷰할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오히려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해결이 아닌, 나아감에 대하여 고민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모두가 원할지도 모르는, 복수 같은 시원한 해결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비판하는 후기들도 충분히 읽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랬기에 이 영화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마주하고, 서로를 보듬고, 함께 용기를 내어 나아가는 이야기. 나는 이런 영화를 지금까지 기다려 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영화의 주인공 '코코로'는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해 등교를 거부하는 소녀다. 그런 코코로가 어느 날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도착한 외딴 성에서 만난 친구들과 관계를 맺어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코코로가 변해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성에 처음 도착한 코코로는 소원의 열쇠를 찾아 소원을 이루고자 했다. 그 소원은 바로 자신을 괴롭히는 같은 반 여학생을 없애달라는, 해결적인 소원이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그녀의 가치관은 변화한다. 영화의 후반에 가면, 코코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소중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소원을 사용한다. 이는 나아감의 소원이다. 둘도 없이 소중한 이들의 존재를 깨달은 끝에, 코코로는 아픔을 마주하고 싸워내기 위하여 함께 나아감을 선택하게 된다. 뻔하게 이야기하면, 성장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째서 코코로의 가치관이 그렇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여야 한다. 어째서 코코로의 가치관은 해결에서 나아감으로 변화했을까? 간단하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관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에 도착한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지 않는다. 그저 쓰라린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쳐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서로와 마주 보고, 이야기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관계는 싹트기 시작한다. 그 마주 봄은 털어놓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늑대님으로부터 소원의 열쇠를 찾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소원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소원은 자신의 아픔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털어놓는 것은 무서운 법이다.

 

그런 묘한 상황에서 코코로는 용기를 낸다. 코코로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코코로의 잘못이 아니라고, 코코로는 분명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키타지마 선생님의 말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아픔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눈치채며 다가와준 선생님 덕분에, 코코로는 모두에게 자신의 아픔과 소원을 털어놓고자 용기를 낸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전부 털어놓으며, 처음에는 자신을 괴롭힌 아이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빌고 싶었지만 모두와 만났기에, 기억을 잃고 싶지 않기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코코로를 친구들은 보듬어준다. 그렇게 그녀는 변화한다. 누나의 죽음을 고백하는 리온의 모습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며 미안하다고 말했던 친구와 오해를 풀며, 위로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털어놓음과 보듬어줌, 그리고 다음에 대해서.

 

코코로는 털어놓았고, 친구들은 보듬어주었다. 이제 다시 코코로의 차례다. 열쇠의 수수께끼를 전부 풀어낸 코코로는 늑대에게 잡아먹힌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마법의 계단을 달려 소원의 방 앞에 도착하고, 친구들의 기억과 하나하나 마주한다. 그들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은 셈이다. 그런 아픔과 마주한 코코로는 보듬어주고자 한다. 분명 모든 기억을 잃을 테지만, 나아가기 위해서는 털어놓은 아픔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코코로는 소원의 방에 들어가 소원을 빌고, 자신을 비추는 수많은 거울 속을 달려 나가며, 끝내 친구들을 구한다.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곳저곳에 나뉘어있던 주제가 비로소 하나로 모이게 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해결이 아닌 나아감을 위한 단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털어놓고, 보듬어, 용기를 갖는 것이 바로 그 단계이다. 이 3단계의 끝에서, 우리는 아픔에 맞서서, 딛고, 나아갈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살고 있는 코코로와 친구들은 성의 기억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 앞날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향하여 살 것이다. 과거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친구들을 기다리며 살 것이다. 그 끝에서 서로 만났을 때, 거울 속 외딴 성의 아이들은 다 함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복기해 보자. 털어놓고, 보듬어, 용기를 갖고, 맞서서, 딛고, 나아간다. 이 단계에 있어 나는 아직 처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은 암시해 두었다. 거울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자, 뛰어난 장면인 코코로가 수많은 거울 속을 달려 나가는 장면에 그 힌트가 있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도구이다. 이 사실을 새겨두시기 바란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과 마주 본다는 것이다. 즉, 코코로는 수많은 거울 속을 달려 나가며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 보는 것이다. 나를 알아야 비로소 상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코코로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 봄으로써 자신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털어놓을 수 있었고, 보듬어줄 수 있었으며, 나아갈 수 있었다. 나의 모습과 마주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픔으로부터 벗어나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과 마주 보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총체는 무엇일까? 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여,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이름은 마음을 뜻하는 코코로(こころ、心)다.

 

자신과 마주하여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아픔을 털어놓아 보듬어, 용기를 갖고, 맞서서, 딛고,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의 최종적인 주제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훌륭한 각본적, 연출적 복선들과 진실은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해 준다. 각본은 진실을 몇 번 꼬았다가, 다시 풀어내어 최종적인 주제를 전달한다. 연출은 이러한 각본을 보조하여, 다양한 복선들을 화면 속에 심어두었다가 공개한다. 그렇게 진실은 아름답게 등장해 감동을 선사한다. 그 감동의 총체인 기억을 잃은 코코로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리온이 마주 보는 장면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기억은 사라진다. 하지만 마음만은 영원히 남는다. 코코로와 리온의 서로를 향한 마음도 그대로 남아, 사랑이 되어 새로이 나아간다.

 

총평

여러 작품에서 아픔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따라서, 그 해결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들도 많다. 그러나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그렇지 않다. 해결이 아닌, 나아감에 대하여 고민한다. 우리는 어떻게 아픔에 맞서고, 딛고, 나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털어놓고, 보듬고,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이 3단계의 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지금까지 두렵고 슬펐던 아픔을 떠나보내리라 믿을 수 있게 된다. 영화 <거울 속 외딴 성>은 이러한 주제를 치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연출을 통하여, 훌륭하게 전해준다. 각본적, 연출적 복선들이 층층이 쌓아 올려지고, 끝내 시공간을 뛰어넘은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의 그 감동이란… 이 영화를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부디 모두가 서로의 아픔들을 털어놓을 수 있기를, 보듬어줄 수 있기를, 끝내 딛고 나아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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