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가레보시 May 01. 2023

항구의 니쿠코짱!

우리의 삶과 터전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


나는 2020년을 기점으로 어떤 애니메이션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20년, 나는 극장에서 영화 <해수의 아이>를 보고 크게 놀랐다. 각본만으로는 주제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방가르드 연출을 통해 문제를 보완하여 끝내 작품을 완성해 낸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패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던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전면적으로 채용하여, 그 이전까지는 딱히 믿고 있지 않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네마스코프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말은 TV 애니메이션 <명일방주 [여명의 전주곡]> 리뷰에서 한 기억이 있다. 그런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신작 <항구의 니쿠코짱!>은 전작보다 정돈된 훌륭한 연출과 시네마스코프의 활용이 돋보이는 명작이다.


털어놓다 보면 깨달을 수 있는 것

주인공 소녀 ‘키쿠코‘는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조금은 어른스러운 초등학생이다. 그렇기에 키쿠코는 항상 고민해 왔다. 언제나 천진난만하게 행동하는 엄마 ‘니쿠코’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 항상 어른스럽게 돌려 대처하기에 끝내 자신만의 결론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전자의 고민은 후술할 ‘사랑’과 ‘가족’에 의해 해결된다. 따라서 이 파트에서 이야기할 것은 후자이다. 키쿠코의 반에서는 점심시간마다 여자 아이들끼리 모여 농구를 한다. 하지만 그 멤버를 고르는 방식은 키쿠코의 친구 ‘마리아’에게는 고깝게 보였나 보다. 마리아는 기존의 방식은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긴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고, 여자아이들은 두 그룹으로 찢어진다. 키쿠코는 마리아를 따르지 않는다. 기존의 방식도, 마리아의 방식도 어딘가 잘못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쿠코는 선택하지 못한다. 조금은 어른스러운 키쿠코지만 결국은 아이이기에,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지 못한다. 그렇게 키쿠코는 마리아와 멀어진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이 주도하던 그룹에서 튕겨져 나오고 만다. 그녀의 방식은 자신이 새로운 반의 중심인물이 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는 너무 과해졌던 것이다. 키쿠코가 그런 마리아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게 되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이상한’ 소년 니노미야와 마주하고 있을 때다. 남몰래 지나가는 동물들을 바라보며 이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처럼, 남몰래 이상한 표정을 지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니노미야는 키쿠코에게 있어 편안한 존재로 다가왔으리라. 덕분에 키쿠코는 니노미야에게만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여자아이 키쿠코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키쿠코는 니노미야에게 마리아에 대한 험담을 한다. 그런 옷차림이 뭐가 공주님 같냐고, 그런 애가 뭐가 불쌍하냐고, 모든 것이 그 애의 자업자득이라고. 그러던 키쿠코는 문득 떠올린다. '아, 나는 지금 마리아를 싫어하고 있구나.' 언제나 어른스럽고, 책을 많이 읽어 똑똑한 아이로 보였던 키쿠코는 자신의 생각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니노미야의 앞에서 키쿠코는 그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다. 그리고 그것이 키쿠코의 본질이다. 그렇게 자신의 본질과 마주하면서, 키쿠코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눈물 흘린다.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키쿠코는 어른스럽고 똑똑한 아이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답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편안함 속에서 털어놓은 끝에, 어린아이 키쿠코는 회피하고, 도망치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키쿠코는 곧바로 마리아에게 달려가 화해한다. 키쿠코는 마리아에게 그동안의 고독을 감내한 것이냐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어른스러움과 다독가적인 면을 조명해 주는 장면이다. 마리아 역시 눈물 흘리며 키쿠코를 맞아준다. 그런 마리아의 대사는 감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어린아이이기에, 그런 어려운 말은 알지 못한다. 이는 아무리 어른스럽고 똑똑해 보이는 키쿠코일지라도, 결국에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동시에 더 나아가 키쿠코와 마리아는 싸우고 멀어져 서로를 헐뜯고 무시했지만, 화해 끝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둘도 없는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싸웠다가도 다시 친해져 함께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우리는 그런 어림 속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기에 눈치챌 수 있는 것

니쿠코와 키쿠코는 전혀 닮지 않은 모녀다. 겉모습도, 성격도 전부 닮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가족이다. 하지만 조금은 어른스러운 키쿠코에게 언제나 천진난만한 어머니인 니쿠코는 조금 부끄럽다. 니쿠코 역시 키쿠코에게 비밀을 만든다. 밤 몰래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을, 니쿠코는 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처럼 묘하게 불편한 관계 속에서, 키쿠코는 복통을 참다 쓰러지게 된다. 참은 이유도 어른스럽다. 자신과 니쿠코를 배에서 살게 해 주신 삿상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키쿠코가 쓰러지고 나서부터, 가족과 사랑이라는 주제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 나간다. 이 주제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들은 모두 복통으로 묶여있다. 키쿠코가 쓰러진 원인인 맹장염과, 후술할 아이를 낳기 위한 산통 및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생리통 모두 복통과 관련 있다.

 

여기서 화면은 잠시 니쿠코의 과거를 비춘다. 스낵바에서 일하던 니쿠코와 키쿠코의 생모 미우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미우는 니쿠코에게 자신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슬퍼한다. 사랑을 잉태하지 못하는 슬픔은 얼마나 아픈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임신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 성스러운 그날 밤, 사랑을 잉태한 미우는 화장실 문을 열며 니쿠코에게 사실을 밝힌다. 니쿠코는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이 된다. 훗날 니쿠코와 미우가 갈라졌을 때에도, 두 사람은 서로와 남겨진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자매는 서로를 사랑했다. 피의 절반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했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동생과, 그녀의 아이를 사랑했다. 결국 피는 중요치 않다. 가족에게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사실은 두 사람의 딸인 키쿠코에게 이어진다. 언제나 어른스러웠기에 복통을 숨긴 키쿠코는 삿상의 다그침에 아이로 되돌아와, 자신은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며 엉엉 운다. 삿상은 그런 키쿠코에게 따끔하게 조언한다. 아이다움을 강요하진 않겠지만, 살아야 한다고. 너는 기다림 속에 태어난 아이니까. 키쿠코와 삿상의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삿상은 키쿠코를 다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키쿠코와 니쿠코의 차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모든 오해와 사실을 풀어낸다. 끝내 키쿠코는 담아두었던 말을 전달한다. 사랑한다는 그 말을. 니쿠코는 과거의 모습을, 지쳐 졸던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한다며 손을 잡아주었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들의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제 영화는 지금까지의 사랑을 마지막 장면 속에 응축한다. 퇴원 후 신사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키쿠코는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니쿠코는 동생이 임신을 알렸을 때처럼, 딸의 성장을 축하한다. 동시에 사랑을 상징하는 복통들은 비로소 하나로 합쳐진다. 맹장염으로 인한 복통은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사랑의 탄생을 위한 산통은 세 사람을 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첫 단계인 생리통은 사랑을 재확인하게 해 주었다. 키쿠코는 아픔 끝에 태어난 사랑의 결실이다. 그런 키쿠코는 사랑을 품기 위한 과정과 같은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언젠가 아픔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 과정에 피는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은, 사랑하기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

이제 사랑과 가족에서 눈을 돌려 한 가지 질문해보고자 한다. 여러분들의 인생은 언젠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애초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기는 할까? 이 영화는 이러한 질문들에 확실하게 답한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키쿠코의 병문안을 온 니노미야는 모형을 완성했냐는 키쿠코의 질문에 그것은 완성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모형은 모두가 살고 있는 항구 마을의 모형이었다. 모형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니노미야의 그 말은, 우리의 인생과 터전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고. 삿상 아저씨의 말씀처럼,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가꾼다. 그렇기에 모형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가꿀 테니까. 터전을 가꾸는 우리의 삶도 계속될 테니까.


총평

털어놓다 보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른스럽기에 언제나 고민하는 아이가 어린 모습을 내보이면서 그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잘못을 깨달아 눈물 흘린다. 사랑하기에 알아챌 수 있는 것이 있다. 가족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 역시 가족들을 사랑하기에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은 피가 이어졌든 이어지지 않았든, 변함없다. 그런 가족들의 사랑과 성장이 영원히 계속되는 작은 항구 마을에서, 두 모녀는 행복하게 살아간다. 어른스럽지만 동시에 어리기도 한 서로를 매 순간 사랑하고 사랑하며 살아나가는 모녀를, 아름다운 항구 마을은 영원히 품어줄 것이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시네마스코프는 그런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훌륭한 작화의 프레임 속에 아름답게 담아내어, 스크린을 향해 비춘다.

작가의 이전글 거울 속 외딴 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