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가레보시 Jun 23. 2023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다시 한번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쓰다


2018년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하나만 꼽기 어려울 것 같다. 2018년은 교토 애니메이션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리즈와 파랑새>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걸출한 두 작품이 공개된 해였기 때문이다. 이들을 잠시 비교해 보자면, <리즈와 파랑새>는 전통적인 일본 셀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확고하게 드러내면서도,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감정 및 관계 표현 연출을 통해 이야기를 극대화해 나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여,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화면 구성과 셀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CG 애니메이팅에 덧칠된 화려한 시각효과는, CG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였다.

 

특히,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화면 구성 역시 독특했지만, 더 중요하게 접근해야 하는 쪽은 셀 애니메이팅과 CG 애니메이팅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활로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전까지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 실사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에 비해 평면적이라는 한계가 더더욱 작화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강화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후자의 경우, 평면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구도, 연출적인 면에서 실사와 유사해졌으면서도, CG라는 특성을 살려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내었다. 즉,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있을 뿐 그 특성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그런 두 분야의 장점만을 가져와 결합하며,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써냈다.

 

결론적으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코믹스의 영향을 받은 화면 구성과 스토리텔링 위에서,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CG 애니메이션의 역동성을 부여한 다음, 화려한 시각효과를 덧칠하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명작의 후속작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전작을 뛰어넘어버리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장점들은 극대화되었고, 이에 색채의 깊이와 변화, 그리고 리듬을 새로 융화시켜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남을 놀랍도록 새로운 작품을 다시 한번 만들어낸 것이다. 우선 기존의 장점들을 되돌아보자.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파이더버스 영화 시리즈의 특징은 코믹스,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의 결합, 그리고 시각효과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이 분야에서 더욱 진보했다.

 

이쯤에서 코믹스의 영향을 받은 화면이 어떤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 단점은, 화면 속에서 코믹스의 정체성이 과도하게 나타난다면 결국 영화로서의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코믹스의 정체성이 과도하게 나타나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닌, 유튜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상툰 정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스파이더버스 영화 시리즈가 이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1편에서 2편으로 점점 발전한다. 1편, 즉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는 만화적이면서도 화면에 녹아들 수 있는 요소들을 선별하여 극대화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예를 들면, 다양한 효과음과 동작 효과들이 화면에 녹아들도록 연출하면서, 이 작품이 코믹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끝내 영화로 귀결된다는 감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다. 2편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작품이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편이 보여주었던 '화면에 녹아드는 만화적 요소'를 그대로 간직한 채, 그 요소를 스토리텔링적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전작에서도 등장했던 만화의 컷 분배 연출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강화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한편, 복잡한 대사와 연출 대신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편 ~에서는...' 같은 설명문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다양한 멀티버스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멋지게 활용되었던 장면이 바로 영화 후반부에 그웬과 마일스의 우주가 서로 엇갈리는 장면이었다. 설명문 한 줄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한 번에 표현해 낸다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내가 오타쿠이기에 하는 이야기인데, 만화와 셀 애니메이션(정확히는 풍이지만)의 조합 덕분에 더욱 시너지가 났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의 결합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차례다. 전작의 옥에 티를 굳이 찾아보자면, 셀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인하여 인물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끊겨 보인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 옥에 티를 보완하여, CG 애니메이션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아크로바틱 액션의 역동성을 강화하면서도, 셀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잃지 않았다. 그 정점이 바로 더블 주인공으로 격상된 그웬 스테이시의 액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영화 초반, 벌처와의 전투에서 보여준 액션은, 셀 애니메이션과 CG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끝에 새로운 애니메이팅의 세계를 열어내고 말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셀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사람도, CG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사람도 모두 좋아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전부 기존의 것을 발전시키기만 한 것이었고, 결국 완전히 새로운 것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으셔도 된다. 그랬다면 나는 이 영화를 놀랍도록 새롭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확실하게 새롭다. 그 새로움을 이끄는 것은, 색채와 리듬이다. 그 두 가지 요소의 주인공은 그웬 스테이시다. 따라서 이 영화의 진주인공도 그웬 스테이시다. 주인공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도록 하고, 다시 색채와 리듬으로 돌아가보면, 그웬 스테이시의 이야기와 그녀의 마음을 이끄는 것이 바로 색채와 리듬이다. 그웬은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친구 피터 파커는 그녀를 향한 열등감에 빌런이 되어 세상을 떠났고, 상처를 조금 딛고 사귄 유일한 친구 마일스 모랄레스와는 다중우주로 갈라져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웬의 우주는 우중충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정체를 숨긴 히어로이기에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감을 덜어줄 친구들 중 한 명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명은 영원히 볼 수 없다. 그렇게 그웬 스테이시의 마음도, 그녀의 우주도 우중충해지고 말았다. 제작진은 그 사실을 색채로 만들어, 그웬의 취미인 드럼의 리듬을 융화시킨다. 그웬의 마음이 우중충할수록, 그녀를 감싸는 배경의 색채도 함께 우중충해진다. 그 우중충한 세계에서 그웬은 아무리 드럼을 연주하며 리듬에 몸을 맡겨도 친구를 사귈 수 없고, 밝아질 수도 없다. 결국 그웬의 리듬은 갈 곳을 잃는다. 그녀가 아무리 드럼을 연주하며 격정을 토해내도, 그 감정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자신을 이해해 줄 유일한 친구는 자신의 우주에 없고, 만나러 갈 수도 없으니까. 색채와 리듬은 그런 감정을 토해낸다.

 

더 놀라운 것은, 그웬의 색채가 영화의 후반에 가면 비로소 밝아지고, 아름다워진다는 점이다. 서장직을 포기하면서까지 딸을 이해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감동과, 메인 설정이 틀어졌음에도 우주가 붕괴되지 않자, 마일스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에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비로소 밝아지는 그웬의 마음은, 마치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듯이 밝아지고, 아름다워진 색채로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여전히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일스 모랄레스의 이야기로서 새로웠다면, 이번 작품은 그웬 스테이시의 이야기로서 새로웠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웬 스테이시는 진주인공이다. 오랜 트라우마를 극복한 15개월 연상의 그웬은,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침에도 결국 어린 마일스를 구해야 한다.

 

이제 멀티버스를 통해 글의 막바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할 때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멀티버스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사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그보다 먼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멀티버스가 확실하게 장르화된 것은 <어벤져스: 엔드게임>, 혹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다. 하지만, 스파이더버스 영화 시리즈를 제외하면 멀티버스를 제대로 다루어낸 영화는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블 스튜디오는 멀티버스 장르의 개척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쓰레기 같은 영화들을 찍어내고 있고(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도 나에게는 쓰레기였다), DC 확장 유니버스는 최후의 작품으로 <플래시>를 공개한 후 망했다. 그나마 괜찮았던 멀티버스 영화라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정도일까.

 

그러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 영화로서도 훌륭하지만, 멀티버스 영화로서도 훌륭하다. 솔직히 다른 제작사들의 멀티버스 영화는 아이들이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도로 유치했는데, 스파이더버스 영화 시리즈가 보여주는 멀티버스는 그 설정을 확실하게 표현하면서도 관객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메인 스토리를 놓치지 않았기에 진중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장점이 더욱 강화되어, 수많은 멀티버스 설정이 빠르게 설명되어 지나감에도 관객은 그웬의 정신적인 성장과, 조금은 성장했지만 자칫하면 폭주할지도 모르는 어린 마일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아무리 장르를 돋보이게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장르에 매몰되는 순간 영화는 나락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8년 공개된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놀랍도록 새로운 작품이었다. 코믹스를 그대로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CG 애니메이팅의 새로운 활로 및 화면 구성에 덧칠된 화려한 시각효과는, 내가 이 영화를 교토 애니메이션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리즈와 파랑새>와 함께 2018년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후속작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그러한 전작마저 뛰어넘고 마는 작품이었다. 전작의 장점들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발전시켜 부여된 아크로바틱 액션의 역동성에, 인물의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색채의 깊이 및 변화, 그리고 리듬을 융화시켜,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남을 놀랍도록 새로운 작품을 다시 한번 만들어내었다. 결국 나는 바라고야 만다. 언제나 아름다웠던 스파이더버스 영화 시리즈가 마지막까지 놀랍도록 새롭기를.

작가의 이전글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